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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7 20:04 수정 : 2005.10.08 19:55

사설

유네스코는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에게 세종대왕상을 준다. 1997년에는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그 과학성과 체계성을 따지기 앞서,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글이라는 주장이 결코 과장된 수사가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한글이 세계화와 디지털화 추세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영어 몇마디가 들어가지 않은 간판이나 표어는 왠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젊은 세대가 실어나르는 인터넷 언어는 어느덧 암호 수준을 넘어섰다. ‘한글 살리기’를 외치는 사람들은 한심한 국수주의자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올해 초 공포돼 지난 7월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국어기본법은 우리 말글 살리기 운동의 알찬 열매다. 주요 조항들이 임의조항으로 되어 있는데다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병들어 가는 우리 말글을 정성껏 갈고 닦을 수 있는 제도적 초석을 놓았다는 점에서 뜻깊은 법이다.

그런데 정부와 공공기관이 국어기본법의 맹점을 이용해 한글 살리기의 훼방꾼 노릇을 한다니, 참으로 기가 찬다.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국어기본법 규정을 무시하는 것도 그렇지만, 법에 따라 국어책임관을 두고 있는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는 단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정부 부처나 산하 단체들은 영어가 뒤섞인 공식 표어를 만들어 버젓이 홈페이지 등에 경쟁적으로 내걸고 있다.

한글날의 국경일 지정에 난색을 표시하는 정부에 한글 살리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말글 훼방꾼’이라는 비난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정부가 겨레의 얼이 깃들인 한글을 발전시키고 가다듬을 의식이 있다면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되, 휴일로는 하지 않아도 좋다는 속깊은 여론에 귀를 열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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