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07.08 18:31 수정 : 2015.07.08 22:11

땅의 감촉을 다시 느끼기까지 계절은 한바퀴 돌았다. 경북 구미국가산업단지 안 45m 높이의 굴뚝에서 농성 중이던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자 차광호(45)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 대표가 농성을 풀고 땅을 밟았다. 400여일의 세월 동안 하늘에서 무더위와 장마, 눈보라와 칼바람을 홀로 이겨내야 했던 그이기에, 이제라도 ‘무사 착륙’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일단 다행이다.

차씨의 고공농성은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케미칼이 2013년 적자와 경기침체를 이유로 공장을 일방적으로 철수하면서 권고사직을 거부한 29명을 해고한 데서 비롯됐다. 차씨를 비롯한 11명은 공장 재가동과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지금껏 힘겨운 싸움을 이어왔다. 이런 고투 끝에 6일 회사와 해복투 양쪽은 올해 안에 새 법인을 만들어 11명 전원 고용을 보장하는 데 합의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엔 고공농성이 마치 일상사인 양 돼버렸다. 차씨에 앞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309일), 최병승·천의봉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296일) 등 극한의 조건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사례는 여럿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선소 크레인, 부산시청 앞 광고탑,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 등에 여전히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무엇보다 2000년대 들어 고공농성이 부쩍 늘어난 현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의 조사에 따르면, 2001년~2015년 6월 사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행된 고공농성 기간을 모두 더하면 무려 4380일에 이른다. 농성자들이 오른 높이만 해도 총 4166m다.

이제라도 하늘을 향해 이 땅의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올라야 했던 이유를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때다. 그 원인은 심하게 기울어진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법과 제도가 더 이상 자신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할 때, 기댈 곳 없는 노동자들은 본디 ‘인간의 땅’이 아닌 곳으로 내몰리듯 기어오른다.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늘에 올랐다”던 차씨의 고백이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나.

차씨는 굴뚝에 머무는 동안 동료들이 올려준 화분에 콩을 심었다. ‘삶의 의지’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더 이상 무관심 속에 극한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기울어진 우리 사회를 서둘러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자이자 ‘굴뚝 농부’가 일깨워주는 열악한 노동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