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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총 승리’ 삼성이 되새겨야 할 교훈 |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안건이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나라 안팎에서 큰 관심을 모았던 ‘삼성-엘리엇’ 주총 대결은 결국 삼성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두 계열사의 합병으로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질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에스디아이(SDI)→제일모직으로 이어지던 기존의 순환출자 구조는 삼성물산(통합법인)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각각 지배하는 단순 구조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은 더욱 커졌다.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될 삼성물산에서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분은 30%를 웃돈다.
‘이재용 체제’ 구축 작업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이 부회장으로의 3세 승계를 위한 변곡점 성격을 띤다.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이면서도 삼성물산 지분이 없던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의 합병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단번에 삼성전자 등 계열사 장악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삼성이 비록 ‘주총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입은 상처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삼성은 이번 합병이 사업 시너지를 높이려는 경영상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는 시장과 사회의 평가에 떳떳할 수 없었다. 이 부회장의 지분을 무리하게 높이려다 보니, 합병비율 산정 과정에서 기존 삼성물산의 주주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공정하지 못한’ 합병이라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에 삼성이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주총을 앞두고 한달여 진행된 엘리엇과의 장외 공방전에서 삼성이 보인 태도도 어설펐다. 엘리엇이 투기적 성격을 강하게 띤 행동주의 펀드라곤 하지만, 우리 기업과 국내 자본시장의 가치를 내다보고 투자에 나선 대다수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자들과 이들을 세심하게 구분하지 않은 채 한 묶음으로 외국 자본 비난에 열을 올린 건, 글로벌 기업의 합리적 대응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오죽하면 “세계시장을 누비는 글로벌 기업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정서에나 기대고 있다”고 외국 언론이 꼬집었을까. 엘리엇이 돈을 벌면 국부가 유출된다며 ‘먹튀론’을 앞장서 퍼뜨린 삼성의 태도는 장기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도를 스스로 갉아먹는 소탐대실의 행위라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다.
삼성이 합병 주총 성공을 위해 투입한 비용이 과연 적정한 것이었는지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삼성그룹 전체가 나서다시피 하며 총력전을 펼친 결과 바라던 결과를 얻어냈다고는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삼성의 미래 건설에 다 쏟아부어도 모자랄 귀중한 자원과 에너지를 주총 이기기에 소진한 꼴이 되었다. 이번 엘리엇 사태는 이런 식의 밀어붙이기 경영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삼성으로선 당분간 달콤한 승리의 기분을 즐길지 모른다. 하지만 이재용 체제 구축과 3세 승계 작업은 이제 막 한고비를 넘긴 데 불과할 뿐이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영환경은 과거 2세 승계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금같이 개방화·국제화·투명화한 환경에서는 시장과 사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경영 행위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의 주총 승리가 미래의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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