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7 22:09
수정 : 2005.01.27 22:09
새만금 간척을 처음 구상한 것은 1970년대 초다. 당시 우리나라 농정의 최대 현안은 쌀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다수확 신품종인 통일벼를 개발하여 강제로 보급하는 한편,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혼식과 분식의 날을 정해 식당에서 흰쌀밥을 팔지 못하게 하였고 심지어 학생들의 도시락 검사까지 하였다. 쌀은 참으로 귀한 존재로 쌀 수확량에 따라 농림부 장관의 목이 왔다 갔다 하였다. 간척이 가져올 환경적 재앙은 잘 알지도 못했고 그것을 따지기에는 개발독재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 사업이 실제로 실시된 배경은 쌀 부족 때문이 아니다. 1987년 12월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새만금 간척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였을 무렵 쌀은 이미 100% 자급하고 있었고, 공사가 시작된 1991년 무렵은 쌀 재고가 1300만~1400만 섬에 이르러 재고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때다. 쌀 증산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망망대해의 바다 보고와 갯벌을 매립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영남 정권의 호남 차별에 대한 비판적 민심을 달래고, 서해안중심 시대라는 개발환상을 심어 호남표를 얻으려는 정치논리가 주된 이유였다.
새만금 사업은 1월17일 서울행정법원이 “간척지의 용도와 개발범위를 결정하고, 환경평가를 거친 뒤 국민적 합의를 얻어 사업을 실시하라”는 조정권고안을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환경단체는 법원의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인 반면에, 정부와 전라북도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총구간 33㎞ 가운데 2.7㎞의 물막이 공사만 남겨놓은 터에 법원의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 이해는 되지만, 농림부가 앞장서서 조정권고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의 새만금 사업의 공식적인 목적은 4만㏊(농지 2만8300㏊와 담수호 1만1800㏊)를 조성하여 한해 14만t의 쌀을 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은 지금 현실에 맞지 않다. 우리는 쌀 소비의 급격한 감소와 수입쌀의 증대로 인해 머지않아 심각한 쌀 과잉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국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85년의 128㎏에서 2004년의 81.8㎏으로 20년간 무려 36%나 줄어들었고, 10년 내로 70㎏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 쌀 재협상 결과 우리나라의 쌀 의무 수입량이 10년 뒤에는 현재의 두 배인 약 41만t으로 늘어나게 되어 있는데, 새만금 간척이 완료되어 연간 14만t의 쌀이 증산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쌀 공급과잉으로 인한 쌀값 폭락은 불보듯 뻔하다. 쌀값 하락을 우려하여 이미 논 휴경제까지 도입한 농림부 입장에서 보면 못이기는 척하고 사법부의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겠는가.
쌀 증산용 농지조성을 위한 새만금 간척은 정당성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물박이 공사가 90% 가까이 끝났고, 이미 2조원 가까운 엄청난 돈이 투자되었으니 물박이 공사를 조기에 마감하고 용도는 나중에 찾아보자는 것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국책사업이 아니고 민간사업이라면 그런 말이 나올 법이나 하겠는가. 간척지의 용도에 따라 환경영향과 소요 투자비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새만금 간척에 이미 지출된 2조원은 경제학적 용어로 말하면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비용이다. 따라서 물박이 공사를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과거의 매몰비용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기회비용에 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방조제를 완전히 막고 용도를 변경하는 경우 우리가 지불해야 할 기회비용(잃어버릴 갯벌의 환경적 경제적 가치, 환경오염 및 생태계 변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추가 투자비용 등)이 예상되는 편익보다 크다면 새만금 간척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이미 건설된 방조제를 친환경적으로 지역발전에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그 동안 투자한 2조원은 그냥 날리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의 조정권고안이 새만금 갯벌도 살리고 전라북도도 발전하는 상생의 길을 찾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박진도/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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