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0 19:48
수정 : 2005.10.10 19:48
사설
검찰 수사 결과 하나둘씩 비밀이 벗겨지고 있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 실태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추악하다. 국정원이 2000년 권노갑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퇴진 운동과 관련해 당내 소장파 의원들의 전화통화를 도청한 사실은 도청이 명백한 정치사찰의 일환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정원으로부터 직접 정치적 압력을 받았다는 당시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의 증언까지 나왔다. 정치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은밀히 뒤를 캐내 겁을 주는 구시대적인 정치공작이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국민의 정부 아래서 자행됐다니 분노를 넘어 허탈감까지 든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가장 추악하고도 비열한 수단인 도청에 국가 운영의 상당부분을 의지했다는 점이다. “파업을 막기 위해 노사정 회의나 노조에서 논의되는 내용도 도청했다”는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의 실토가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도청의 결과물이 ‘통신첩보’란 이름으로 버젓이 상부에 보고됐다고 하니 도청이 거의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나 의구심마저 든다.
검찰이 앞으로 밝혀내야 할 내용은 너무나 명백하다. 국정원과 당시 정권 실세들 사이 유착관계 전모, 청와대 등 공식 라인의 개입 여부 등을 한점 의혹 없이 파헤쳐야 한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도청 문제에 대한 진솔한 설명을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와 정권 실세들의 유착관계도 뜨거운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당시의 여러 정황에 비춰볼 때 정보기관과 정권 실세들 사이의 추악한 뒷거래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 추론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정치적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도 이 대목의 수사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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