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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폭력 근절 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
최근 드러난 한 서울 공립고의 성추행 파문을 계기로 교육청과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7일 성범죄로 수사받는 교원은 직위해제하고 군인·교원·공무원이 성범죄로 벌금형만 선고받아도 임용을 제한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학교 내 성폭력을 은폐한 경우에도 최고 파면으로 징계하겠다고 했다. 전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성범죄 사실이 확인된 교원은 바로 퇴출시키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중요한 건 이런 대책이 엄포에 그쳐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직사회에서 성 관련 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엇비슷한 대책이 반복해 제시됐지만, 여전히 온정주의가 작동해 제재의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성범죄로 징계받은 교사의 절반이 애초 근무하던 학교에 여전히 다니고 있을 정도다. 학교 못지않게 성범죄가 빈발하는 군대에서도 형사처벌되는 비율이 극히 낮고 고급 장교일수록 쉽게 제재를 비켜간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 관련 법률을 반드시 정비해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앞으로 사법기관도 이런 사건에 대해 더욱 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공적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가 뿌리뽑히지 않는 원인은 제도적 결함에만 있는 게 아니다. 힘 있는 자들은 아무리 추한 일을 저질러도 결국 유야무야되고 만다는 경험칙에 기반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탓도 크다. 아무리 추상같은 제도가 마련된다 한들 권력에 힘입어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례가 온존한다면 제도의 억지력은 흔들리게 된다.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이 막강한 이들의 성추문에 훨씬 단호하게 철퇴를 내려야 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불거진 심학봉 의원(전 새누리당 소속)의 성폭행 의혹은 정부의 성폭력 근절 의지를 시험하는 사례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자신의 미온적인 태도가 정부의 성폭력 근절 대책을 헛구호로 전락시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 영역에서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구조적 원인과 해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제가 된 서울 공립고의 경우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학교 운영이 교사들의 성폭력을 조장하고 이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고충처리 담당자를 두고 신고절차를 마련해도 강압적이고 경직된 위계문화에서는 제구실을 하기 힘들다. 학교, 군대, 공무원 조직 등이 더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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