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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적절한 감시체제 필요한 특수활동비 |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는 흔히 ‘눈먼 돈’으로 불린다. 예산 편성 때 총액만 국회에 보고하고 결산 때도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수증을 첨부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쓰인 돈이 올해엔 19개 기관 8800억원에 달한다. 이 ‘특수한 예산’에 대해 야당이 이제야 감시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선 건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야당이 특수활동비 문제를 국회 운영의 핵심 쟁점으로 제기한 건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고 여당에선 몰아세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 세금을 함부로 쓰는 잘못된 관행이라면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 고치는 게 옳다.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과 시민단체에선 특수활동비 운용을 개선하라고 지적해왔지만, 국회 역시 특수활동비의 덕을 보는 기관이라 그런지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야당이 먼저 문제를 제기했지만 여당도 이 사안을 정쟁으로 몰아갈 게 아니다. 국민의 편에서 투명한 예산 집행 방안을 강구하는 게 국회 본연의 자세다.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하면 정보기관의 기밀활동이 적에게 노출돼 국가안보에 치명타가 될 것이란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아무리 비밀스런 정보활동과 작전이라도 최대한 그 내용을 공유하고 공개하는 게 옳다는 건, 미국의 9·11 테러 진상조사위원회가 몇년에 걸친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특수활동비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작전이나 검경의 비밀수사뿐 아니라 기관장의 조직운영비 또는 격려금으로까지 폭넓게 쓸 수가 있다. 단적인 예로 국회의장과 부의장, 여야 원내대표와 상임위원장은 매달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원활한 국회 운영’에 사용한다. 그렇게 받은 특수활동비를 가족 생활비나 아들 유학 비용으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건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러니 특수활동비 내역을 국회가 들여다보고 감시해서, 국민 세금의 낭비와 유용을 막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국민 모두에게 공개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국회 정보위에서라도 사용 내역을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최소한 제한된 범위의 예산 전문가들에겐 비공개라도 감시를 받는 체제를 갖추는 게 맞다. 또한 국가안보나 비밀 수사와 관련 없는 국회·총리실 등의 특수활동비는 아예 없애고, 필요하면 그 예산을 업무추진비 등으로 돌려서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 모든 기관의 특수활동비를 같은 선상에 놓고 다룰 일은 아니며, 중요도에 따라 공개 범위와 감시 주체에 차등을 두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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