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0.13 20:06 수정 : 2005.10.13 20:08

사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권 발동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하지만 사안의 핵심을 흐리는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면서 논란이 소모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매우 개탄스럽다. ‘검찰 길들이기’ ‘사법질서 파괴행위’ ‘국가보안법 무력화 의도’ 등의 주장은 검찰을 자극·선동하거나 이번 사안을 정치쟁점으로 몰고가는 데는 좋은 수단일지 모르지만 사안의 본질과 크게 어긋나고 생산적 논의와도 동떨어져 있다.

우선, 헌정사상 첫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검찰이 받은 충격과 당혹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주목할 대목은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지난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법무장관이 은밀하게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린 적은 수없이 많았고, 아예 총장을 건너뛰어 지검장이나 일선 검사한테 수사 방향을 강요한 사례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우리 사회가 밀실주의에서 공개주의로 한걸음 전진한 것을 의미한다.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앞으로도 남발되지 않을까 하는 검찰의 우려와 걱정은 이런 점에서 기우로 여겨진다. 이번과 같은 지휘권 행사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며 앞으로 되도록 없어야 한다는 데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돼 있다고 본다. 법무장관 또한 지휘권을 행사했다면 자신의 판단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검찰 역시 자신들의 판단이 모두 옳다는 그릇된 발상은 버려야 한다. 검찰이 정치권이나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게 옳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와 다를바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검찰권 행사와 견제의 틀을 좀더 확고히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인신구속 관행 고치는 계기도야

셋째, 이번 사태는 인신구속을 남발하는 그동안의 관행을 불식시키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동안 수사당국은 피의자를 일단 구속부터 하고 보자는 관행에 젖어 있었다. 국민의 일반적 정서도 ‘구속=유죄’ ‘불구속=무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이나 인식에는 이제 확실히 선을 그을 때가 됐다. 강정구 교수 사건의 경우 그가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 천 장관 역시 강 교수가 무죄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검찰에 수사중단을 지시한 것도 아니다. 혹자는 ‘법무부가 왜 다른 사건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강 교수의 경우에만 나섰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비판도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인식 구속의 남발 문제는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번 사태를 승화·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제 국가보안법의 존폐 문제를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다.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서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 나와 다른 생각이라도 관용하는 사회, 사회의 대다수 의견과 다른 의견을 폈다고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 국가보안법은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명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볼테르의 유명한 경구는 강 교수 사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제 정치권, 특히 열린우리당은 이번 사태가 보안법 논쟁으로 치닫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법의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