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6 19:47
수정 : 2005.10.16 19:47
사설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 방침과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이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지며 혼란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일선 검사들이 격앙하고 검찰 조직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거기에 일부 언론들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가해자’ ‘검찰=피해자’라고 규정해 검찰 안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동요는 나라는 물론 검찰 자신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시점에서 검찰은 냉정한 자세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번 사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뒤돌아봐야 한다.
우선, 강 교수 사건은 한나라당 소속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애초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끝날 사안이었다. 우리 사회의 역량은 그 정도의 발언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돼 있다. 강 교수 한 사람의 주장으로 국가 안보가 위태롭게 될 만큼 허약하지도 않다. 둘째로 그의 발언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 하더라도 구속해 수사할 사안은 아니었다. 실제로 서울지검이 강 교수의 신병처리 방향과 관련해 “구속할 수도, 구속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대검에 보고한 것도 구속만이 능사가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천 장관은 강 교수의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이다. 강 교수를 수사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처벌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었다. 검찰이 피의자를 구속할 때 형사소송법 원칙에 충실하라는 내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처럼 단순한 사안을 검찰은 자신들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린 문제로 확대해석을 함으로써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 검찰의 이런 태도의 밑바탕에는 자신들이 내리는 결정은 모두 옳으며 그 누구도 간섭하면 안 된다는 오만과 조직보호 논리가 깔려 있다. 하지만 검찰의 명예는 잘못에 대한 인정과 이를 바로잡는 용기를 보일 때 더욱 올라간다. 일부 강경파 검사들의 주장처럼 김 총장의 사퇴로 과연 검찰의 자존심이 지켜졌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지휘권 발동에 대해 검찰이 느끼는 충격과 당혹감,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장관의 지휘권 남발을 용인하고 넘어갈 만큼 우리 사회가 어리숙하지 않다는 것을 검찰이 모를 리 없다. 더욱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제대로 확립되기만 하면 장관이 지휘권을 남발할 이유도 없어진다.
김 총장의 사퇴는 애초의 우려처럼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렸다. 관심의 초점이 ‘천 장관의 동반사퇴 여부’나 ‘후임 총장 인선 방향’ 등으로 쏠리면서 정작 중요한 핵심인 인신구속 남발 폐습의 근절이라는 과제는 시야에서 벗어나 버렸다. 수준낮은 논쟁이 범람하면서 이번 사태를 생산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기회를 잃을까 걱정된다.
검찰은 이제 건강한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엄정한 법의 집행자임과 동시에 인권옹호 기관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검찰이 걱정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어떻게 하면 헌법의 정신과 형사소송법의 원칙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느냐다. 검찰의 독립성은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한나라당이나 일부 수구언론도 천 장관에 대한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공세를 접어야 한다. 형사소송법의 원칙에 충실하라는 지휘내용이 어떻게 “헌정질서 파괴” “자유민주주의 체제 위협” 행위인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빨리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이번 사태가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 신장의 계기로 승화·발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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