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나라 구실’ 외면한 정부의 장기재정전망 |
기획재정부가 2060년까지의 장기재정전망을 4일 발표했다. 장기전망을 처음 시도했다는 의미는 있다. 그러나 이듬해 경제 전망조차 엉터리로 하면서 45년 뒤의 재정전망을 근거로 “재정 지출을 억제하고 규제개혁에 매진해야 한다”고 경고한 것은 밥도 되기 전에 숭늉부터 마시는 꼴이다. 무엇보다 조세부담률을 높이는 것은 아예 고려에 넣지 않은 반쪽짜리 전망이다. 복지 지출을 비용으로만 여기고, 저출산·고령화와 소득 격차 확대 등에 대응해 나라살림이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경제성장률 수준으로만 재량지출을 늘려가도 복지제도에 따른 의무지출이 계속 늘어나, 내년에 국내총생산의 42.3%인 국가채무가 2060년에는 62%로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해 더는 복지 관련 지출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45년 뒤 국가부채비율이 65%라면 건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가채무 비율이 평균 115.4%다.
나라살림의 구실을 확대하는 것이 매우 절박한데, 형평에 맞게 세금을 더 걷는다는 생각은 아예 고려에서 빼놓았다. 내수 부진이 고질병이 되고 성장잠재력이 추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노인 빈곤, 청년 실업, 초저출산 문제에 더 적극 대처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슬로바키아를 빼고는 가장 낮은 조세부담률을 점차 높여가면서 국가가 적극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 이를 싹 지워버린 정부의 장기재정전망은, 복지 확대 공약을 다 파기해버리고도 나랏빚은 백조원 넘게 늘린 박근혜 정부 재정 운용의 실패를 숫자놀음으로 덮으려는 시도로 비친다.
정부는 사회보험 기금의 고갈을 막기 위해 국민의 부담을 늘려 가면 2060년 국민부담률이 지금보다 11.4%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3년 우리나라 국민부담률이 24.3%인데, 45년 뒤에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34.1%)과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공적 연금·보험 가운데 부담과 급여 체계를 개선해야 할 부분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모든 제도를 싸잡아 저부담-고급여 체계로 몰고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이 불가피한 것처럼 흘리는 것은 속내가 의심스럽다. 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민간 시장을 키우자는 속셈이라면 무책임하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