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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케케묵은 소요죄 꺼내들고 뭘 하겠다는 건가 |
경찰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대회 때 빚어진 폭력사태에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이름도 생소한 소요죄는 1980년대까지 독재정권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시위 탄압에 적용하던 형법 조항이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이 소요죄로 처벌받은 대표적 사례들이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된 1990년대 이후로는 적용된 적이 없다.
경찰은 5일 범국민대회가 평화롭게 끝난 다음날 케케묵은 소요죄를 느닷없이 들고나왔다. 폭력사태 운운하며 범국민대회를 원천봉쇄하려다 난처한 처지에 몰린 경찰이 분위기 반전을 꾀하려는 의도라고 의심할 만하다.
소요죄가 30년 가까이 사문화해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화를 통해 집회·시위가 헌법적 권리로 인식됐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우선 적용했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소요죄는 권리로서의 집회·시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 즉 폭동이라 부를 만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 시위대 일부가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고 해서 이를 적용하는 건 과잉이다. 집시법에 별도로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 등을 규제하는 조항이 마련돼 있는 만큼 이를 적용하면 충분하다.
경찰의 소요죄 카드는 또 하나의 무리수다. 경찰은 5일 범국민대회에 대해 세 차례나 금지통고를 했다가 법원이 이를 부당하다고 결정하는 바람에 톡톡히 망신을 샀다. 소요죄를 적용하더라도 법원에서 또 퇴짜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역행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인다.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정권의 정통성만 깎아먹을 뿐이다. 과거 이런 행태를 보이던 경찰의 신뢰도가 얼마나 추락했었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조계사에 피신해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경찰 출석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5일 집회 원천봉쇄 시도 등 경찰의 무리한 탄압이 피신의 명분을 준 측면이 있다. 소요죄 운운하며 무리한 공안탄압 의도를 드러낼수록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출석을 거부하는 한 위원장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법을 경시한다고 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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