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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의당, 정체성 확립이 시급하다 |
한상진 국민의당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라고 평가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위원장은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진화에 나섰으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가 현재 신당의 ‘간판’으로 당의 전체적인 기류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언의 의미를 가볍게 보아넘기기 힘들다.
국민의당은 이념적 유연성과 통합, 중도 등의 이미지를 강조해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를 꾀하고 외연을 확장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 위원장 등 당 핵심 관계자들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잇달아 참배해 이들의 공을 높이 평가하고 나선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 물론 정당이 어떠한 역사인식 아래서 어떤 이념적 좌표를 설정하느냐는 전적으로 그 당의 자유다. 하지만 그 역사인식이 기존 여당과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라면 한번 숙고해볼 문제다.
잘 알다시피 ‘이승만 국부론’은 단순히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통한 국민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차원을 벗어난다. 이승만 국부론은 ‘1948년 건국설’과 함께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 친일과 건국의 정통성, 통일 문제 등을 둘러싼 모든 논쟁에서 보수와 진보가 확연히 나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뉴라이트는 물론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이 이승만 국부론을 적극 주창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한 위원장이 이 전 대통령을 국부로 모셔야 한다고 나섰으니 ‘새누리당과 정체성에서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위원장이 말했듯이 국민의당은 아직 “역사 해석의 기본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어정쩡한 상태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역사에 대한 인식은 현재를 진단하는 창이자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다. 한 정당의 역사인식 정립은 곧바로 그 정당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규정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를 추구해나갈 것인가를 결정짓는 요체이기도 하다.
지금 정치권은 일대 혼미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다당 구조 경쟁 속에서 진영과 진영 사이를 넘나드는 대이동이 벌어지면서 유권자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정당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국민의당은 정체성의 모호함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창당을 앞두고 국민의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사인식 정리를 통한 정체성 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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