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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이 ‘입법 서명운동’에 참가하다니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경제 관련 입법’ 촉구를 위해 경제단체들이 벌이는 1천만명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서명운동에 나선다니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과거에도 대통령과 국회가 갈등을 빚은 적은 있으나, 대통령이 ‘국민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해 이렇게 포퓰리즘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 적은 없었다. 1975년 유신에 대한 야당과 재야의 저항이 거세지자,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동원해 체제 정당성을 억지 인정받은 장면이 떠오른다.
국회 압박을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는 건 국정 운영을 책임진 대통령이 할 도리가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보지만, 심정과 서명운동 참가는 엄연히 다르다. 정치를 포기하고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다. 더구나 지금 국회 다수당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서명운동을 벌이기 이전에 과연 얼마나 야당과 대화했는지부터 자성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야당과 단독으로 만난 건 취임 직후 단 한 차례뿐이다. 여야 지도부를 함께 만난 것도 5차례 정도에 불과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야당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는 미국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이렇게 국회와 대화하지 않는 대통령은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도 없었다.
원래 서명이나 청원은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수단이다. 전경련 등이 약자인지 모르겠으나, 입법에 관해선 서명운동을 벌일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모든 정책과 정치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의 대통령이 서명운동을 벌이는 건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희화화하는, 도를 넘은 행동이다. 박 대통령은 서명운동 이전에, 수많은 시민들의 집회나 시위, 서명운동을 폭력적으로 막는 행위부터 중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무리한 행동을 하니 여당인 새누리당도 18일 국회선진화법 개정안을 국회 운영위에 전격 상정했다가 의도적으로 ‘부결’시키는 편법을 감행했다. 정해진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회법의 맹점을 노려 법 개정을 시도한다면, 앞으로 누가 법과 제도를 존중하고 따르려 하겠는가.
지금 박 대통령은 포퓰리즘에 기대 법치와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독재자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정녕 박 대통령이 그 길을 따라가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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