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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혼란 심화시키는 이라크 선거 |
제헌의원을 뽑는 이라크의 총선이 내일 치러진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1년10개월 만이다. 말로는 ‘이라크 역사에서 처음 치르는 다당제 자유선거’이지만 이슬람 수니파의 다수와 저항세력을 배제한 ‘반쪽짜리 선거’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도 저항세력의 공격이 잇따르면서 후보자의 유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지역이 많다.
이번 선거는 이라크에 민주주의의 씨를 뿌리기보다 분열과 혼란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후보의 얼굴도 잘 모르는 채 투표장에 나갈 유권자들은 주로 자신이 속한 종파와 부족에 따라 표를 던질 것이다. 투표율이 얼마든 결과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인구의 60% 이상인 이슬람 시아파의 정당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미국의 침공에 협력한 쿠르드족 정당도 부상할 것임이 분명하다. 침공 전에는 지배 종파였다가 약자로 바뀐 수니파는 이들과 심한 알력을 빚을 수밖에 없다. 쿠르드족의 독립 움직임도 더욱 거세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함께 중동의 새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것은 미국이다. 불법으로 침공한 것부터가 큰 죄악이지만, 침공 명분이 거짓으로 드러났는데도 새로운 구실을 내세우며 무력 점령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미국은 이번 선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밀어붙여 왔다. 이라크와 이라크인을 분열시켜 지배하겠다는 제국주의적인 의도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행태다.
지금도 이라크인의 90% 이상은 미군을 점령자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어슬픈 민주주의 이식이 아니라 미군 철수와 국민 통합이다. 미국은 선거 결과와 상관 없이 신속하게 철군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라크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재건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도와야 할 것이다. 미국은 더는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허황한 변명으로 세계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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