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인과 함께 자녀를 유학 보내고 6년이나 홀로 지내던 50대 ‘기러기 아빠’가 어제 숨진 지 닷새 만에 발견됐다. 그는 평소 고혈압으로 시달리면서도 외로움과 학비 걱정에 술·담배를 끊지 못하다가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슬그머니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한국의 기러기 아빠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월 ‘한국의 기러기 가족’을 주제로 세 쪽에 걸친 특집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초·중·고 조기 유학생이 2만920명(초등생 1만1059명, 중학생 4372명, 고교생 5088명)에 이르고, 유학 및 연수 비용으로 모두 7조원(재경부 추정 올 유학비는 10조원) 정도가 지출됐다고 하니, 외국인들의 관심은 당연해 보인다.
기러기 아빠의 규모에 대한 통계는 없다. 조기 유학생 중 부모의 보살핌이 불가피한 초·중등생이 70% 이상 차지한다는 사실로 규모를 짐작할 뿐이다. 기러기 가족의 위험성은 이미 명확하다. 기러기 아빠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양숙씨는 ‘내보내는 순간 자식(혹은 가족)을 잃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는 이런 엄마의 일탈을 뜻하는 ‘오과부’라는 말이 나돈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 현상은 어떻게든 자기 자녀는 출세시키겠다는 부모의 생각, 돈벌이 기계로 전락한 아버지 위상에서 비롯됐다고 최 박사는 말한다. 공교육의 붕괴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경쟁체제 등이 여기에 가세했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이란 유익한 존재라는 느낌, 인정받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나온다. 그것을 주는 곳이 가정이고 학교다. 공교육만으로도 잘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만 준다면 답은 찾아질 것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