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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야당의 존재 의의 없어진 ‘안보 우클릭’ |
야권이 심각한 혼돈의 시대다. 서로 나뉘어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야당의 철학과 이념, 존재 의의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모습이 연일 펼쳐지고 있다. 특히 북핵 사태에 대응하는 야당의 태도를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급기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19일 ‘평화·통일의 시대적 사명을 통감하지 못하는 야당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야당을 강력히 비판했다.
물론 야당도 사안에 따라서는 정부여당의 방침에 찬성할 수 있고, 변화하는 시대 환경에 맞추어 기존 정책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폐쇄 등 최근 정부의 마구잡이식 대북 강공몰이는 그런 차원의 사안이 아니다. 백 교수 등이 성명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지금의 상황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둘러싼 상식과 비상식 간의 충돌”이다. 그런데도 야당은 “정부의 왜곡과 허위를 수수방관”하고 심지어 “합리화해주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
야당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발언은 주로 과거 보수 진영에 몸담았던 영입파 인사들한테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나름 ‘개혁적 보수’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지만 남북문제 등에서는 기존의 야당 흐름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북한 궤멸론’으로 논란을 빚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나, 개성공단 폐쇄를 찬성한 이수혁 한반도경제통일위원장, 햇볕정책을 비난한 국민의당 이성출 안보특위 위원장 등이 모두 그렇다. 두 야당 모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현실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당의 정체성이 아직도 아리송한 국민의당은 그렇다 쳐도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수혁 위원장은 “계속 화해나 협력만을 주장하면 설 땅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 간 공동체를 발전시켜 통일 기반을 만들어 나간다’는 당의 기존 강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이다. 이런 인식의 소유자가 당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 책임자를 맡고 있어도 좋은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야당은 유권자들의 안보 불안 심리를 고려할 때 ‘안보 우클릭’이 총선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고 오산이다. 여당인지 야당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정당,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합리화해주는 야당에는 기존 지지층마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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