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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철회하고 재협상하라 |
테러방지법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을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이어지고 있다. 야당 의원들이 길게는 10시간 넘게 테러방지법안 반대 연설을 하며 여당의 일방적인 표결처리를 저지했다. 반대토론을 할 의원들이 줄지어 있어 이대로라면 며칠이고 이어질 태세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이 규정한 합법적 의사진행 지연 행위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난처럼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 아니라,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시행해온 의회민주주의 본연의 장치다. 한국에서도 제헌국회 때부터 인정돼온 것을 유신정권 때인 1973년 없앴다가 2012년에야 되살렸다. 이번 필리버스터도 거대 여당의 테러방지법안 강행 처리를 막아야 하는 야당의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필리버스터를 비난할 게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야당의 동의를 얻을 방안을 찾는 게 옳다. 그러진 않으면서 단독 처리를 밀어붙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테러방지법이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법이라면 굳이 지금 여당 단독 처리를 고집할 일이 아니다. 국민안전 보호는 다른 무엇보다 여야가 지혜와 뜻을 모아야 할 사안이다. 그런 일을 야당은 뿌리친 채 여당 독단으로 처리하려 한다면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야당의 걱정도 법 제정 자체보다 과거 잘못을 씻지 못한 국정원에 과도한 권한을 주는 법안 내용일 것이다. 야당이 비판하는 ‘독소조항’을 뺀다면 법안의 합의 통과가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이다. 국정원이 자의적으로 테러위험 인물로 지목하면 영장 없이 금융정보나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한 조항, 국민의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조항 등이 인권을 침해할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논의하자면 직권상정부터 철회해야 한다. 이번 직권상정은 처음부터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이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근거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느낄 만한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억지로 비상사태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직권상정이 정당화될 순 없다. 직권상정과 날치기 대신 대화와 타협이 복원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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