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살생부’로 번진 청와대 공천 개입 |
새누리당이 ‘공천 살생부’를 둘러싸고 갈등과 논란에 휩싸였다. 친박계 핵심 인사가 최근 김무성 대표에게 현역 의원 40여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건네며 ‘물갈이’를 요구했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이 명단엔 친박계 중진 의원들과 함께, 비박계 의원 다수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김 대표와 친박계 모두 명단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어 그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생부 존재설’이 새누리당 안에서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에는 청와대의 노골적인 공천 개입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공천 무렵이면 정치권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살생부’가 돌아다닌 게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명단의 파장은 과거와는 좀 다르다. 명단에 이름이 오른 비박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박근혜 대통령의 눈밖에 났다고 알려진 사람들이다. 더구나 청와대와 친박계에서 공공연히 “진실한 박근혜 사람(진박)을 밀어달라”고 ‘박근혜 마케팅’을 전개하는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공천은 정당이 선거에서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 최선의 후보를 뽑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모든 정당의 공천 과정이 똑같을 수는 없다. 각자 자기 정당에 맞는 방식으로 참신한 인사를 발굴해서 내세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은 있다. 현역 의원을 물갈이한다면 그 기준은 공정해야 하고, 국민과 당원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새누리당에선 그런 원칙과 기준이 실종됐다. 오직 ‘누가 대통령을 배신하지 않을 진실한 친박이냐’는 지극히 자의적이고 퇴행적인 분류만 난무할 뿐이다. 그러니 진위를 알 수 없는 ‘살생부’ 하나에 집권여당 전체가 들썩이며 친박-비박 싸움이 달아오르는 것이다.
그런 토양을 제공한 책임은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있다.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는 노골적인 대통령 발언이 여당 공천을 뒤틀리게 하고 온갖 소문을 양산하는 진원지 구실을 하고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공천에서 손을 떼는 게 옳다. 친박계 역시 유권자를 도외시한 채 대통령에게만 기대 공천을 받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당 공천은 대통령이 아니라 당원과 국민에게 책임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