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1 20:35
수정 : 2005.10.21 20:35
사설
[3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 폐막 때 각국 정상이 고유 의상을 입고 어울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좋았다. 다음달 부산 아펙 회의에서 정상들이 어떤 패션을 보여줄지 벌써 궁금하다. 어제 유네스코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킨 문화다양성 협약에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반대 또는 기권했지만,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뽐내는 이런 행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출현은 금세기의 가장 뜻깊은 사건 가운데 하나다. 지금 세계화의 파고는 세계를 하나의 획일화된 시장으로 바꿔버리고 있다. 각국의 말과 글, 음악·무용·연희, 그리고 식음료 습관마저도 획일화한다. 이런 문화제국주의 흐름에 맞서 세계인이 기울인 노력의 결정체가 문화다양성 협약이다. 거대자본의 생물종 다양성 파괴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듯이 거대자본의 문화다양성 파괴는 인류를 창조적 주체에서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킨다. 할리우드 영화의 공격을 방치했다면, 세계인에게 특별한 상상력과 경험을 제공하는 한국 영화는 이미 씨가 말랐을 것이다.
우리 영화인과 문화계는 세계인의 모범이었다. 미국 정부와 거대자본의 난폭한 공세에 맞서 스크린쿼터제를 지켰다. 반면 한국 정부는 여전히 미국의 통상압력을 버거워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나 외교통상부의 통상관료들은 스크린쿼터제 포기를 종용해 왔다.
미국은 이 협약이 권리와 의무에서 다른 조약과의 관계가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쌍무협상에서 자국의 이해를 강요하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 협약은 기초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154개국(반대 혹은 기권 6개국)이 합의한 장전이다. 정부는 그동안 취했던 모호한 태도를 청산해야 한다. 문화다양성 보호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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