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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보통 얼굴이 어쨌다고? / 듀나 |
‘‘보통 얼굴’ 그녀들 볼수록 설렌다’라는 기사(<한겨레> 3월14일치)를 읽었다. 최근 각광받는 젊은 네 배우인 김고은, 박소담, 한예리, 이솜을 소개한 글이었는데, 여기서 ‘보통 얼굴’은 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이다. 의도는 좋다. 하지만 ‘보통 얼굴’을 키워드로 삼는 순간, 기사는 계속 위험한 헛발질을 한다.
우선 여기에 이솜이 들어가 있는 것부터 어색하다. 나머지 셋이야 ‘한예종 무쌍 삼총사’라고 불린다고 해도, 이솜은 이들과 별 접점이 없다. 미래가 기대되는 좋은 배우이긴 하지만 아직도 연예인으로서 이솜의 가장 큰 무기는 패션 모델 출신의 화려한 미인이라는 것이고, 팬들도 이솜의 그런 이미지를 기본적으로 먼저 소비한다. 외까풀의 개성 강한 얼굴이라고 미인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미인으로 태어나 자신의 외모 자산을 야무지게 써먹고 있는 연예인에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머지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배우 데뷔 이전에 외모에 자신이 없었다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미인으로 알려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처음부터 이미 존재하는 틀에 맞는 미인들도 있고 스스로 자기만의 틀을 만드는 미인들도 있다. 후자라고 해서 미인이 아닌 ‘보통 얼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요새 패션 화보에서 박소담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그 사람이 ‘연기를 잘하는 보통 얼굴에 소박한 분위기의 배우’여서가 아니라 포토제닉한 미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지금까지 우리 눈에 안 들어왔지만 지금은 널리 예찬되고 있는 새로운 아름다움의 특별함을 이해하는 것이지 왜 평범하게 생긴 애들이 이렇게 인기일까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보통 얼굴’을 예찬하기 위해 비교 대상으로 연예계의 ‘성형미인’들을 끌어들이면서 기사는 더 위험해진다. 이제 도미노처럼 모든 게 마구 넘어지기 시작한다. 멀쩡하게 예쁜 사람들이 ‘보통 얼굴’이 되었고 그 ‘보통 얼굴’의 범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연기력도 부족한 ‘성형 미인’이 되었다. 범주 바깥의 사람들이 실제로 성형을 했느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주인공인 네 배우를 포함한 여자 연예인 대부분이 지독하게 단순한 두 개의 카테고리 안에 갇힌다는 것이 문제다. 어떤 사람들도 그렇게 단순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단순함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최대한으로 간단한 개념과 단어 속에 자신의 사고를 가두고 그 안에서 심지어 가장 원초적인 감각적 쾌감마저도 재정의하며 거기에 만족하는 것. 한국어 문화권에서는 유달리 자주 있는 일이다. 이 기사의 가장 큰 문제점도 다양한 외모와 재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갖다 놓고 외까풀과 쌍꺼풀로 이들을 가른 다음 이들의 외모와 재능과 가치를 모조리 재정의해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연예인의 외모처럼 명쾌하기 짝이 없는 대상에도 이런 식의 개념 필터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이 영역 바깥의 보다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방식은 어떨 것인가.
듀나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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