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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마디 반성 없이 ‘총선 민의’ 말할 자격 있나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4·13 총선 결과에 대해 첫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선거가 끝난 지 닷새 만이다. 충격적인 선거 결과에 비하면 너무 늦게 나온 건데, 그것마저 대통령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부분은 단 한마디도 없다. 이렇게 자의적으로 ‘민의’를 해석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뻔뻔한 건지 아니면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연할 따름이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여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고 사명감으로 경제발전과 경제혁신을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20대 국회가 민생과 경제에 매진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길 기대한다.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선거 직후인 14일 청와대가 내놓은 “일하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는 딱 한 줄짜리 논평에 비하면 그나마 이게 낫다고 해야 할까.
박 대통령은 ‘민의’를 말하면서도 ‘민의의 내용’엔 눈을 감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은 고사하고 원내 제2당으로 추락하는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바로 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국회와 야당을 경시하는 일방적인 국정운영이 이런 결과를 불러온 핵심 원인이다. 그래서 야당 지지자는 물론이고 새누리당 지지자마저 야당을 찍거나 아예 기권해버리는 대대적인 민심 이반을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3년간의 국정운영을 진솔하게 반성하고,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국정 방향을 바꾸겠다고 다짐하는 게 먼저다. 이게 진짜 ‘민의’를 존중하는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민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선 한마디 반성이나 사과가 없다. 오히려 “사명감을 갖고 경제발전과 경제혁신을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하는 걸 보면 기존 노선과 정책, 사람을 고수하겠다는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렇게 자기 편한 대로만 세상을 보려 하는지 모르겠다. 한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이 그렇게 외골수의 아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건 국민에겐 매우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이런 대통령 앞에서 민의를 밝히는 선거를 백번 천번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박 대통령 발언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건 ‘국회와 긴밀하게 협조하겠다’는 대목이다. 과연 이 말은 진심일까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소야대 체제에서 대통령은 국회와 협력하지 않으면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나갈 수 없다. 대통령에게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력하라는 게 바로 이번 총선에서 표출된 ‘민의’다. 박 대통령은 말로만 ‘민의’를 얘기할 게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국민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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