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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은 독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3년 만에 한 간담회는 여러 면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오랜만에 언론과 먼저 만나자고 했기에 4·13 총선 결과를 받아들여 국정운영에 뭔가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불통의 극치인 기존 국정운영 스타일을 바꿀지,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과 대화와 협력을 할 용의는 있는지, 친박 세력을 통해 여당을 좌지우지하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바꿔 나갈지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 그러나 바뀐 건 없었다. 대통령은 독선과 오만의 방에 높은 벽을 치고 빠져나오려 하질 않았다.
대통령은 2시간 넘는 간담회 동안 지금까지 해왔던 내용을 반복했을 뿐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이게 집권여당을 사상 최악의 참패로 몰고 간 총선 직후에 열린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국 간부들과의 대화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더 절망적인 건, 박 대통령이 ‘총선 민의’를 완전히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남은 2년을 ‘마이웨이’ 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국정을 책임진 정치인이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는 건지, 참담한 기분마저 든다.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방식을 전환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선택한 것, 그다음에 이번 총선을 통해서 국민이 만들어준 틀, 그 안에서 국정을 이끌어가고 책임을 져야 한다. 정책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 엄청 다른데 막 섞으면 안 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개각을 비롯한 인적 개편 문제에선 “내각을 바꾸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황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결국 내각과 청와대 진용을 바꾸지 않고 이제까지의 국정운영 기조와 방향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총선 이후 인적 개편 주장이 여권에서조차 강하게 제기된 건 현재의 진용이 대통령 국정운영을 올바르게 보좌하지 못했다는 평가에서였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으니 인적 개편을 통해서라도 국민에게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게 총선에 담긴 국민의 뜻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런 뜻을 단호히 거절했다.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김종인, 유승민, 진영, 이상돈, 조응천씨가 모두 당선된 게 뜻하는 바를 대통령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참모들과 남은 2년을 계속 가겠다는 오기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다.
대통령은 여소야대로 바뀌는 국회와 대화하고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국회와의 협력을 말하면서도 구조조정 지연의 책임을 떠넘기는 등 여전히 ‘모든 책임은 국회에 있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국회와의 관계에서 되는 것도 없고 식물국회라는 보도도 봤지만 그런 국회에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겠다는 게 민의인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총선 민의’를 이렇게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할 수 있는 건지 아연할 따름이다.
4·13 총선은 누가 뭐래도 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다. 여당인 새누리당마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국정운영 방식의 근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선거 민심을 거부하고 변화에 고개를 젓는 대통령을 어찌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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