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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가 키우는 ‘집단탈북 의혹’ |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과 관련한 의혹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이 관련 정보 공개와 종업원들에 대한 변호인 접견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의혹을 키우고 있는 꼴이다.
이 사건은 발표 당시부터 미심쩍은 대목이 많았다. 13명이나 되는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이 한꺼번에 탈북을 시도해 이틀 만에 동남아 나라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다는 발표 내용 자체가 아주 특이했다. 정부가 이들의 입국 다음날인 4월8일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총선을 불과 닷새 앞둔 시점이어서 ‘국정원이 주도한 기획탈북’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후 진상 파악에 필요한 정보는 전혀 공개하지 않은 채 ‘자발적인 탈북’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건 직후부터 ‘남쪽의 납치’라고 주장한 북쪽은 여러 기관을 동원해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송환을 도와달라는 서한을 유엔에 보내고, 같은 식당에서 일한 종업원과 가족들을 여러 차례 북한 안팎의 방송에 등장시키는 등 여론전도 강화하고 있다. 북쪽의 한 단체는 국정원의 조사를 받는 12명의 여성 종업원(나머지 1명은 남성 지배인)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는 실신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런 의혹을 풀려면 종업원들의 공개 기자회견과 인터뷰, 변호인 접견 보장, 탈북 당시 국정원의 역할에 대한 해명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감감무소식이다. 북쪽 종업원들이 입국한 지 40일이 돼 가는데도 자세한 경위 설명은 고사하고 이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식이어서는 북쪽은 고사하고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도 이해시킬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가 이들 종업원을 상대로 무리하게 말맞추기를 꾀하고 있다는 의심이 더 커질 것이다. 그렇잖아도 최악의 상태인 남북관계에도 두고두고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이 대북 정보력과 독점적인 권한을 활용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사례는 그동안 심심찮게 있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잖다. 정부는 이제라도 투명한 자세로 의혹을 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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