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6 20:51
수정 : 2005.10.26 20:51
사설
검찰이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차장을 기소하면서 공개한 공소장을 통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정치사찰 실태가 생생히 드러났다. 국정원은 정치인 등 주요 인사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아예 감청장비에 입력해 놓고 통화 내용을 낱낱이 엿들었다고 한다. 도청 내용 가운데는 ‘금전관계, 사무실 운영관계, 여자관계, 자기 과시 내용’까지도 포함됐다고 하니 군사독재 시절을 뺨칠 만큼 파렴치한 ‘민간인 사찰’이 자행됐던 것이다.
게다가 도청 결과물은 대화체로 요약돼 매일 7~8건씩 국정원 차장, 원장 등에게 보고됐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도청은 김대중 정부의 국정 운영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겉으로는 인권정부를 표방하면서도 속으로는 ‘도청 정치’를 한 셈이니 할말을 잊게 된다. 검찰이 ‘공모범’으로 명시한 전직 국정원장들이 그래도 “도청이 없었다”고 계속 부인할지 궁금할 뿐이다. 국정원이 이렇게 버젓이 도청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권 실세들의 적극적인 비호 덕분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런데도 검찰이 아직까지 도청 자료의 유출 여부 등을 명백히 밝혀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다.
안기부의 문패를 국정원으로 바꿔달면서까지 국정원의 정치개입 근절을 호언장담했던 김대중 정부가 결국 이런 꼴이 된 것은 국정원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한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습성이나 조직의 관성은 위에서 몇 마디 말로 다그친다고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게 아니다. 참여정부도 결코 자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또다른 불법행위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 철저히 챙겨야 한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국정원의 불법행위가 터져나와 우리를 놀라게 할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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