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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어처구니없는 정부의 ‘살균제 참사’ 직무유기 |
고용노동부(옛 노동부)가 옥시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유해성을 1997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환경부 등 관련 부처에 통보하거나 공표하지 않았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462명의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제조·유통업체뿐 아니라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국정조사특위 소속 이정미(정의당) 신창현(더민주) 의원은 1997년 유공(현 에스케이케미칼)이 노동부에 제출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조사보고서에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에 대해 ‘흡입했을 때 환자를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기도록’ 해야 한다는 등 유해성·위험성에 따른 조처사항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이 보고서 내용을 환경부 등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그 살균제의 위험성이 공표됐다면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무책임성과 직무유기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살균제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옥시레킷벤키저의 존 리 전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하는 등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관계자들을 법정에 회부했으나 정부 쪽 인사들에 대해선 유죄 가능성이 작다는 등의 이유로 미적대다 뒤늦게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 사건에서도 정부의 책임은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1997년 항균 카펫 첨가제용으로 들여온 유해물질(PHMG)을 2001년부터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하도록 방치해 2006년 처음 어린이 사망자가 보고된 이래 현장에서 참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도 정부기관 어느 곳도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유해물질 사용을 허가해줬고 산업통상자원부(기술표준원)는 카펫 첨가제가 가습기 살균제로 쓰이도록 방관했다.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역시 5년이나 손 놓고 있다가 2011년에 와서야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가능성을 밝혔다.
가습기를 씻어내는 용도 이외에, 호흡기에까지 닿는 분무형 살균제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괴물질의 사용을 방치한 것은 돈벌이에 눈먼 파렴치한 기업과 무책임한 정부의 공동책임임이 분명하다. 검찰 수사와 국회 조사 과정에서 정부 책임이 좀 더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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