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30 21:28
수정 : 2005.10.30 21:28
사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지난 주말 주요 정당으로서는 처음으로 헌법 초안을 결정했다. 자민당은 이 초안을 공식 발표하는 시점으로 창당 50돌이 되는 새달 22일을 선택했다고 한다. 보수 정치세력들의 결집으로 출발한 자민당의 창당 목적이 개헌에 있었던 만큼 개헌론자들은 초안 마련을 획기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민당 지도부는 개헌 작업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현 평화헌법으로는 환경권이나 개인정보 보장 등 시대의 새로운 요구에 대응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나아가 당내 강경파들이 요구해온 일본의 독자적 전통 강조 등 복고적 내용을 초안에서 빼거나 완화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아무리 논점을 돌리려 애를 써도 그들의 속셈이 평화헌법의 무력화에 있다는 점은 전혀 변함이 없다. 자민당 헌법 초안의 핵심은 위헌론의 대상이 됐던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명시한 점이다. 초안은 개헌에 대한 안팎의 반대여론을 의식해 평화헌법의 근간인 9조에서 ‘전쟁 포기’를 규정한 1항은 유지하는 대신, 2항에서 ‘전력 불보유’와 교전권 부인을 언급한 부분은 삭제하고 자위군을 보지한다고 못박았다. 또한 자위군의 임무로서 자위권 행사, 긴급사태 발생시 질서유지 외에 국제협조 활동을 명기해 해외에서의 무력행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다.
우리가 일본의 개헌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개헌 추진 세력의 역사관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헌세력의 뿌리는 평화헌법을 점령군이 강요한 헌법으로 폄하하고, 도쿄 군사재판도 점령군에 의한 일방적 재판이므로 전범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 닿아 있다. 이런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개헌작업이 진행된다면 동아시아의 진정한 화해와 공동체 구성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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