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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당의 정체성 의심받게 하는 더민주 |
더불어민주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령과 정책을 재정비하면서 강령 전문의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이란 표현에서 ‘노동자’를 삭제했다.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 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물론 당 강령이란 게 지고지순의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시류에 휩쓸려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사회 상황은 유동적이기 마련인데, 그때 당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강령이다. 그래서 강령을 손보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새 강령 준비위는 “‘시민’이란 단어가 ‘노동자’를 포괄한다”고 삭제 이유를 밝혔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과거 제1야당이 굳이 강령에 ‘노동자’를 포함한 건,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권리와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농민·도시서민·소상인 등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각오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시점에서 그 의미가 훨씬 약한 ‘시민’이란 단어로 대체하는 것은 당 중심의 오른쪽 이동으로 충분히 의심 살 만하다.
더구나 김종인 대표는 여러 차례 ‘노조는 사회적 문제나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 김 대표 인식으로 보면, ‘노동자’를 지운 게 기업에 좀 더 호의적인 정당으로 비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낳게 한다.
김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등 더민주 지도부는 요즘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안에서 의도적으로 태도를 모호하게 하려 애쓰고 있다. 사드 문제에서 당론을 정하지 않는 건 대표적 사례다. 그게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 중도를 지향해도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가치는 유지해야지, 그걸 불투명하게 한다면 굳이 지지자들이 더민주를 선택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아무리 정권 잡는 게 중요하다지만 대선을 1년4개월이나 남긴 시점에서 벌써 당의 색깔을 지워 표를 얻으려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더민주는 27일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연다. 안보와 노동 문제에서 ‘전략적 모호성’이 새로운 지향이라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그 내용을 밝히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전당대회는 더민주의 최근 모습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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