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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 앞 원로 독립지사의 ‘건국절’ 일갈 |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힘으로써 대한민국의 뿌리와 법통이 임시정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의 근간이 되는 이 원칙은 지난 10여년 사이 역사 왜곡 세력의 발호와 준동으로 극심하게 흔들렸다. 뉴라이트를 포함한 역사 왜곡 세력은 이승만 정권의 1948년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만들고 임시정부를 법통에서 추방하려고 기를 썼다.
이런 수작에 일침을 놓는 발언이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나왔다. 원로 독립유공자인 김영관(92) 전 광복군동지회장이 대통령을 앞에 두고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 출범했다면서 이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역사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대한민국이 1919년 4월11일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 엄연한 사실”이라고 강조하고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젊은 날 광복군의 일원으로서 나라를 되찾고자 싸웠던 원로 독립지사의 통탄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는다.
역사 왜곡 세력의 건국절 주장 근저에 친일파와 그 후손들을 건국의 공로자로 둔갑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명박 정권 이래 수구보수세력의 역사 뒤집기 작업이 집요하게 계속됐다. 박근혜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8월15일 광복 70년 경축사에서 “오늘은 건국 67주년”이라고 발언해 건국절 주장 세력에 동조했다. 박근혜 정권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음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12일의 청와대 행사에서도 김 전 회장의 지적에 응답하기는커녕 북한의 도발 위협을 들먹이면서 사드 배치 반대를 유언비어로 몰아붙이는 데만 힘을 주었다. 낡은 레코드판만 틀어대며 동문서답한 것이다.
광복 이후 지난 70년 세월은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참담한 일이다. 대통령과 국정 담당자들은 우리의 쓰라리고 아픈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김 전 회장의 충언을 겸허히 받아들여 가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자는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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