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31 19:39
수정 : 2005.10.31 19:39
사설
1994년 대대적인 윤이상 음악축제가 추진되면서 그의 귀환 가능성이 높아지자, 선생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며 편지 한 장을 국내의 잡지사에 보냈다. “(고국에 돌아가면) 나는 흙 가까이 입을 대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충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67년 동백림 사건을 꾸민 중앙정보부의 살인적인 고문 끝에 간첩으로 조작된 그에게 문민정부는 준법서약서와 사과를 요구했다. 침대맡에 고향인 경남 통영의 빛 바랜 사진을 걸어놓고 늘 바라보던 선생은 비원을 이루지 못한 채 이듬해 11월3일 작고했다.
그는 이런 이루지 못한 소망도 덧붙였다. “(일찍이 고향에 갔다면) 남북 음악교류나 남도창의 현대화 작업을 했을 겁니다. 유장하고 굴곡 있는 창법이 현대적으로 처리되면 아주 훌륭한 음악세계가 전개될 것입니다. 음악을 통한 남북교류 사업은 민족분단의 비극을 종식시키는 데 효과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의 10주기를 맞아 독일과 남북한 제자와 음악인들은 지금 추모 국제음악제를 열고 있다. 북한 평양(10월26~28일), 중국 베이징(30일)를 거쳐 오늘부터 서울과 통영에서 음악회 및 추모행사(3일까지)를 연 뒤 독일 베를린(3~5일)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세상이 평화롭다면 작곡가가 아니어도 좋다고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의 감수성은 음악 창작 이전에 이미 아픈 영혼들과 함께 울고 있었습니다.”(제자 홍은미)
한사코 화해와 평화를 노래하고 실천했던 선생. 그를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할 조국은 선생의 영혼마저 ‘형집행정지’(간첩죄) 상태로 잡아두고 있다. 누가 사과하고 준법서약을 해야 하나. 윤이상인가, 대한민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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