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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세 관리 외교’를 뛰어넘어야 |
박근혜 대통령이 동방경제포럼(EEF),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일부터 8일까지 러시아·중국·라오스를 방문한다. 북한을 뺀 한반도 관련국이 대거 참석하는 회의들이다. 다자 회의 외에 여러 양자 회담이 열려 북한 핵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문제 등 한반도 관련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 여건은 좋지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를 발표한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두드러지면서 북한 핵 문제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일본이 갈등하는 양상도 갈수록 심해진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뚜렷할수록 우리의 선택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의 실질적인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외교 주도력도 떨어지고 있다.
우선 요구되는 것은 정세 관리다. 상황 악화를 막고 국제협력을 위한 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특히 사드 문제로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을 다독일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 철회를 밝히지 않더라도 유연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우려를 깡그리 무시하기보다는 대안에 대한 중국 쪽 얘기를 성실하게 들어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러시아와는 극동지역 개발과 관련한 협력을 진전시켜야 한다.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의 중심지다. 북한과 가까운 이 지역에 거점을 확보하면 우리의 행동반경은 이전보다 넓어지게 된다.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국제공조를 새로운 차원에서 다지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재·압박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넘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일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 계획을 구체화하고 관련국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몫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미-중 대립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국제협조와는 별도로 남북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정세 관리는 필수적이지만 현안들을 근본적으로 푸는 것은 아니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이 핵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의 접근 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을 이번 순방에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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