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30 19:39
수정 : 2005.01.30 19:39
1월17일 서울행정법원은 문제의 새만금사업에 대한 조정권고안을 제시한 바, 새만금 간척지의 용도 특정과 개발 범위를 검토하고 결정할 위원회를 국회나 대통령 산하에 두고 이 위원회에서 논의가 끝날 때까지 방조제 공사를 중단하도록 주문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권고안 내용에 어민의 입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새만금연안 주민들도 수용의사를 밝혔지만,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8일 고위 당정회의를 열어 권고안을 거부하고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묻고 싶다. 당정회의에 참석한 국무총리, 열린우리당 당의장, 농림부 장관 및 관계부처 장관, 전북도지사 등은 권고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기라도 했을까. 재판부는 방대한 양의 새만금 공부를 엄정하게 하고서 권고안을 작성했다 한다. 실로 65쪽에 달하는 권고안은 그 흔적이 역력히 배어 있으며, “해양생태계를 파괴하는”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는 것”의 심각성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새만금사업 찬성의 목소리를 높여오던 한 연안 주민은 권고안 문건을 다 읽어보고서 아무 소리도 못하더란다.
그렇다. 문제는 진실이다. 재판부의 권고안은 진실을 담고 있다. 권고안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는, 달리 말하면, 그 안에 담긴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진실을 (자본과 권력과 돈의) 탐욕 속에 숨기느냐에 다름 아니다.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농림부 및 농업기반공사의 조직이기주의 혹은 정부 및 전라북도의 “정치적 이유”를 위해 방조제 공사를 완공하자는 것은 진실의 은폐이자 이성의 마비이다. 재판부가 오류 투성이의 새만금 관련보도를 지적하며 취재기자들에게 제대로 알고 제대로 보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한 것은 이 엄청난 사업의 진실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자는 게 아니었을까.
감사원의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새만금 간척지를 복합산업단지로 개발할 경우 28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하니, 재판부가 이 거액의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되어야 하므로 전라북도 주민들을 포함해서 전 국민적인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그러기에 용도를 정확히 결정하고 방조제 공사 진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권고는 현 상황으로서 최상의 이성적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왜 ‘용도 특정’ 즉 ‘새만금 간척지는 무엇으로 사용될 것인가’를 핵심 쟁점의 하나로 부각시켰는가. 농림부 및 농업기반공사는 복합산업단지로 임의변경하다 감사원의 특별감사로 지적되자 표면적으로는 애초 인가된 농업용지 조성으로 포장하고 있으나 내심 다른 꿍꿍이를 하고 있다. 재판부는 김포매립지를 사례로 들면서 새만금 간척지의 용도를 농경지에서 복합산업단지로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가 핵심적인 이유는, 용도 변경에 따라 담수호의 수질관리가 더 큰 문제가 되어 시화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환경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는데, 무조건 막아놓고 나중에 따져보자는 것은 무책임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권고안은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라는 게 아니었다. 빨간불이니 일단 멈추어서 이성을 갖고 일종의 진실게임을 해보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정부는 권고안을 받아들이면 장기표류하면서 기존 방조제의 안전이 위협되고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거부하겠단다. 그러나 법정공방으로 장기표류하기는 마찬가지일 터, 잠시 멈춰 손실보는 것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크나 큰 국가적인 재앙” 사태를 초래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현명하지 않겠는가. “아직까지 그 가치가 증명되지 않은 무수한 생명체들이 새만금갯벌에서 서식하고 있다”고 권고안은 증언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조정권고안이 실패해 다시 법정 판결로 넘겨졌다. 숨통이 트이도록 새만금 생명체들에게 희망의 선물을 안겨줬으면 한다. 고길섶/<문화과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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