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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1 19:38 수정 : 2005.11.01 19:38

사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 혐의에 대한 수사가 전직 국정원장들의 사법처리 여부 결정만을 남겨놓은 채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의 도청 수사는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직 안기부 고위 간부들이 모두 혐의 사실을 부인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따위로 발뺌하면서 수사가 벽에 부닥친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도청의 증거물만 남고 도청의 구체적 실상이나 책임자는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끝날 가능성마저 있다. 죄를 고백한 사람들은 형사처벌을 받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 활개치게 생겼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삼성의 불법로비 혐의 등 이른바 ‘엑스파일’ 내용 수사 역시 답보 상태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이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검찰은 아예 수사에 손을 놓고 있다. 홍 전 사장이 다음주에 귀국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그동안에도 그가 귀국 항공편을 예약했다가 취소한 적이 몇차례 있다고 하니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검찰은 홍 전 사장이 스스로 귀국하기만을 느긋하게 기다리지 말고 미국과의 사법공조 등 좀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안기부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 집에서 발견된 도청 테이프 274개의 내용 공개나 수사 문제도 이제 매듭을 지을 때가 됐다. 여당과 야당은 각각 특별법과 특검법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지만 국회의원 재선거 등을 거치면서 도청 테이프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어진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도청 테이프 내용 수사는 이 땅의 고질병인 정-경-언 유착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도 결코 비켜갈 수 없는 과제다. 정치권은 하루바삐 협상에 나서 결론을 내기 바란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며칠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를 만나 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강력한 유감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는 그 직후 단행한 개각에서 아소 다로 외상과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기용했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역사왜곡 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에서 극우 성향이 두드러진 인물이다. 나빠진 국민 여론을 무릅쓰고 반 장관의 방일을 결정한 우리 정부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개각을 통해 아시아 외교를 희생시키더라도 철저하게 미국 중심으로 갈 것임을 분명히했다. 그가 “강경파 쪽이 외교는 잘 되는 법”이라며 아소 외상을 전진 배치했다고 하니, 아시아 외교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아베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 의지를 되풀이했다. 그는 대북한 경제 제재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대표적 대북 강경파이기도 하다. 이들의 요직 진출은 곧 재개될 6자 회담과 북-일 수교 교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와 중국 등 아시아에 대한 일본의 외교 기조는 이제 갈등과 무시를 넘어 적대로 가는 듯하다.

그러잖아도 고이즈미 정부는 군사 대국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나라들과의 갈등을 의도적으로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터다. 기본 구도로 보면 과거 일제가 했던 행태의 재판이다. 사태가 이렇게 나빠진 데는 우리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아무리 선의로 대해도 상대가 호응하지 않으면 기존 정책은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우선 반 장관이 밝힌 대로 다음달로 예정된 한-일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는 “고이즈미 총리의 바른 역사인식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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