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용역을 의뢰해 상장 및 등록 기업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분석해 봤더니, 여전히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기업들이 말로는 경영 투명성을 높이겠다면서도 외부와의 사이에 쳐 둔 두터운 장막은 걷어낼 생각이 없었음을 읽게 한다.이사회 구성이나 운용 실태 등을 살펴본 내부견제 시스템은 100점 만점에 41점에 그쳤다. 2년 전 같은 조사에서 나왔던 38점보다 좀 높아졌으나 개선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한심한 수준이다. 사내 등기임원은 물론이고 사외이사 선임 역시 81.6%가 그룹 총수나 총수의 손발 격인 구조조정본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듯이, 이러니 지배주주가 전횡해도 이사회가 거수기 구실밖에 더 했겠나 싶다.
경영 투명성을 높일 공시나 외부감사 등 외부견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제도는 92점으로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갖춰져 있지만 실제 작동 수준은 43점으로 2년 전과 마찬가지다. 기업이 주요 내용은 잘 알리지 않고 공시하는 시늉만 낸다든지, 지배주주가 기업에 손실을 끼쳐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그릇된 풍토 탓이 크다. 투자자나 소수주주는 지배주주에게 잘못이 있어도 책임을 묻는 데 여전히 큰 벽을 느끼고 있다.
기업들은 툭하면 출자총액 제한제도 등 재벌정책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며 풀 것을 요구하지만, 그 전에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부터 하는 게 순서다. 그러면 그런 제도의 존재 의미도 줄어들고, 반기업 정서라는 말도 자연스레 가라앉을 터이다. 삼성그룹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나 사법처리가 임박한 두산그룹 총수 일가 사건은 모두 지배구조 안에 견제 기능이 미약하고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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