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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6 18:16 수정 : 2016.10.26 20:13

국민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은 상상 그 이상이다. 비선 실세의 위세 앞에 국가의 공조직은 참으로 비루하고 허약하기만 했다. 명색이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사람들이 최씨 앞에 굽실거리는 모습이야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비선 실세의 권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 행정관들뿐이겠는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비롯해 이 정권의 난다 긴다 하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도 최씨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분명히 확인된 사실은 박근혜 대통령을 지탱해온 힘의 원천은 비선 실세와 문고리 권력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박 대통령의 수족이었는지, 아니면 박 대통령이 이들의 아바타 노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비선 실세 국정농단을 조장·비호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인사 추천 보고서가 공직자 인사검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최씨에게 전달되고, 우리 군과 북한군의 비밀접촉 등 일급 안보 기밀 사항까지 최씨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던 게 과연 박 대통령 뜻과 무관한 것인가. 박 대통령이 그토록 애지중지해온 문고리 측근 정호성 비서관이 매일 최씨에게 30㎝가량 두께의 ‘대통령 보고서’를 전달한 것을 두고 박 대통령은 “나는 몰랐다”고 잡아뗄 것인가.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 숨만 쉬고 있을 뿐 모든 기능이 마비된 식물정권이다. 그것은 단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거대한 민심의 분노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선 실세는 박 대통령의 뇌였다. 입는 옷가지와 장신구에서부터 연설문 문안 하나까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 뇌였다. 그런데 그 뇌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게 됐다. 비선 실세가 곁에 없는 박 대통령은 머리카락 없는 삼손에 불과하다. 이래저래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한 셈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국가 운영이 총체적 마비 상태에 빠져 버렸다는 점이다. 국민의 마음속에 이미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면한 국가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방안으로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 총사퇴, 거국내각 수립,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등 온갖 처방전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자신의 처지를 착각하는 한 백약 처방이 무효다. 실제로 청와대의 인식은 아직도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6일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들 분석을 해보면 아닌 쪽으로 되는 것 같다”는 엉뚱한 답변으로 더욱 국민의 화를 돋웠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박 대통령은 10·26을 기해 사실상 정치적 생명을 다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권력 내부의 문제로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국민을 우습게 알고 군림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미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 정치적 부활의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뭉개기와 꼼수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 인식이 그나마 박 대통령이 살고 나라가 사는 출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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