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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박 대통령, ‘피해자 코스프레’로 위기 모면 못 한다 |
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사퇴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대학가와 시민사회, 종교계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박 대통령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했다. 박 대통령은 이미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불가능한 ‘국민 탄핵 대통령’이 됐다.
이런 미증유의 국가적 비상사태를 수습할 해법 찾기의 출발점은 명확한 사실관계의 확인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최순실 게이트 의혹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은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사실 못지않게 틀린 대목이나 과장, 왜곡도 혼재할 것이다. 따라서 우선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가리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탄핵이나 사퇴를 현시점에서 운위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의 검찰 수사로는 실체적 진실이 불가능하며 특별검사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새누리당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수사 대상에 포함하느냐를 놓고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새누리당 친박계 인사들은 대통령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임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조항을 들어 특검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실로 가당치 않은 주장이다. 형사상 소추를 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대통령이 진실을 밝힐 의무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그 본질은 ‘박근혜 게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의혹의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수사 대상에서 빠진 특검 결과가 사실관계를 온전히 드러낼 리 만무하며, 그 결과를 수습의 실마리로 삼을 수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
현직 대통령이 특검 대상이 되는 것은 본인은 물론 국가적으로 큰 치욕이자 수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치욕과 수모를 딛고 일어서야 비로소 나라가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지퍼게이트’ 사건 당시 모니카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체액 디엔에이 검사에 응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특검 수사에 응함으로써 그는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고, 미국은 가까스로 치욕의 늪에서 벗어났다. 이번 사태의 수습 방안과 관련해 깊이 음미해볼 대목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특검 수사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데 있다. 청와대는 “최순실씨의 호가호위”니 “일부 참모들의 일탈”이니 하는 변명을 앞세우며 “박 대통령도 피해자”라는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하고 있다. 내심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개편 정도로 위기를 모면할 궁리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미봉책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박 대통령 스스로 특검 수사를 자청해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 이것만이 박 대통령이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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