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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최순실 수사, ‘보이지 않는 손’의 짜맞추기 아닌가 |
청와대를 통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가 30일 돌연 귀국했다. 잠적했던 최씨의 귀국에 앞서 최근 2~3일 사이 최씨의 측근이나 관련자들이 잇따라 검찰에 자진 출석하거나 기자회견을 했다. 중국에 있던 차은택씨도 곧 귀국할 것이라고 한다. 때맞춰 청와대 수석들은 일괄 사표를 제출했고, 미적대던 검찰 수사도 짐짓 속도를 내는 양상이다. 마치 각본이라도 짠 듯 공교롭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 그 방향은 결국 ‘곁가지’로 사건을 짜맞춰 축소하고 조기에 미봉하려는 쪽일 터이다. 그리될 일도 아니거니와, 그리되도록 둘 수도 없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처음부터 스스로 한계를 정해뒀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수사 대상을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의 불법 자금 조성 및 횡령 의혹, 대통령 연설문과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 등 두 갈래로 한정하고 출발했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청와대 회의와 기자회견에서 이들 사안에 자신이 연루돼 있음을 공개적으로 ‘자백’한 터인데도, 검찰은 헌법상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 조항을 내세워 아예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이는 잘못이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직권남용과 횡령 등 형사 실정법 위반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내팽개친 채 ‘비선 실세’의 국법행위 관여를 허용해 헌정 질서를 교란한 데 있다. 이 문제까지 규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의 재임 중 소추가 제한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사까지 못 한다고 볼 일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 수집이 어렵고, 심지어 증거인멸의 우려까지 있다면 더더욱 미뤄선 안 된다.
그것 말고도 지금 검찰 수사는 영 미덥지 못하다. 검찰은 귀국한 최씨를 긴급체포하기는커녕 당장 소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전례가 드문, 과도한 배려다. 최씨가 측근이나 청와대 쪽 연루자들과 말을 맞출 시간을 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은 청와대 관련자들의 거주지와 사무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빼놓았다가 뒤늦게 압수수색에 나섰고, 그나마 청와대 쪽이 ‘알아서’ 내주는 자료만 받아왔다. 제대로 수사할 의지라도 있는지 의심된다.
검찰이 본격 수사를 미적대면서 시간과 여유를 준 사이에 벌어진 증거인멸과 사전 말맞추기는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검찰이 뒤늦게 케이스포츠재단을 압수수색했지만 이미 컴퓨터가 다 바뀐 상태였다. 재단의 자회사처럼 운영됐던 최씨 소유의 더블루케이에서도 대부분의 증거가 파기됐다.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대포폰’을 동원하면서까지 집요하게 자신의 개입 사실을 아는 정현식 전 케이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을 접촉하려 했다. 정 총장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그랬으니, 말을 맞춰 수사를 왜곡하려 했던 것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조직적인 증거인멸과 은폐·왜곡 시도가 벌어지는 동안 검찰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이런 시도가 무엇을 겨냥하는지는 분명하다. 박 대통령을 보호하고 사건의 규모와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것이겠다. 정교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니 기획하고 지휘하는 세력도 있음 직하다. 검찰은 이런 시도에 더는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은폐와 왜곡이 통하던 시대는 이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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