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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과거사 반성 없는 ‘아베 외교’의 이율배반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현지시각)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공습지인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찾았으나 전쟁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과거사 반성 없는 ‘아베 외교’가 미국의 뒷받침 아래 질주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피해국들의 우려가 커지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정상이 함께 진주만의 전쟁 추모시설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피해 지역 방문에 이어 ‘전후 71년’을 총괄하는 이벤트인 셈이다. 두 정상이 동맹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두 나라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두 나라는 지난해 4월 가이드라인(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일본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등 ‘글로벌동맹’을 본격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새 미국 정부도 이런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아베 외교는 미국만 바라볼 뿐 가해국으로서 책임을 외면하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인데다 현실적으로도 갈등을 키우고 있다. 아베 총리는 27일 ‘전후 평화국가의 행보에 긍지를 느낀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는 자위대의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평화헌법 개정까지 꾀한다. 그는 침략과 식민지배와 관련해 ‘침략엔 정해진 의미가 없다’고 했으며 ‘태평양전쟁은 자위를 위한 성전’이라는 전쟁관을 갖고 있다. 한·미·일 역사학자들은 며칠 전 공개질문서를 통해 ‘한국과 중국 희생자는 왜 추모하지 않느냐’고 그를 질타한 바 있다. 중국 정부도 그에게 “쇼를 하지 말고 침략 역사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아베 외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애써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꾸로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분명히 묻고 동아시아 평화구조 정착을 꾀하기는커녕 미-일 동맹의 충실한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길로 가고 있다. 지난달 조인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지난해 12월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대표적 사례다. 이와 관련해 주요 대선 주자들이 모두 위안부 합의를 재협상 또는 무효화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우리가 일본이라는 이웃을 취사선택할 수 없듯이 역사의 진실도 바뀔 수가 없다.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진정한 화해도 이뤄질 수 없음을 아베 총리는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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