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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뇌물공여’ 뚜렷해진 삼성, 처벌 피할 수 없다 |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9일 삼성그룹 수뇌부인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실장과 장충기 차장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한 대가로 삼성이 최순실-정유라 모녀를 지원했다는 혐의다. 사실이면 제3자 뇌물공여다. 합병으로 그룹 경영권 승계를 굳힌 이재용 부회장이 그런 ‘거래’의 수혜자이니, 이 부회장도 곧 소환될 것이다.
삼성과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한 청탁’과 ‘금전 지원’을 주고받은 정황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삼성의 변명이 사실 앞에서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 삼성은 독일에 있던 정유라씨에게 금전 지원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그런 일 없다’며 부인하다가 사실관계가 드러나자 ‘어쩔 수 없었다’고 뒤늦게 인정했다. 승마를 앞세운 정씨 지원이 합병에 도움을 준 대가라는 의혹도 한참이나 부인하다가 하나하나 사실로 확인되자 ‘우리도 압박에 못 이긴 피해자’라며 말을 바꿨다. 더는 ‘피해자’ 시늉을 하기 어려울 성싶은데도 한사코 변명이다.
삼성의 변명 가운데 “이미 합병됐는데 무슨 청탁을 했다는 것이냐”는 게 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이 2015년 7월10일이고, 삼성물산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된 것이 7월17일인데, ‘합병 및 경영권 승계 지원’과 ‘정유라 지원’이 논의됐다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는 7월25일이어서 ‘앞뒤가 안 맞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삼성의 그런 변명과 달리, 특검은 삼성이 진작에 청와대로부터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약속받고 최씨 모녀에게 지원을 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삼성의 변명이 거짓이라고 볼 만한 정황은 분명하다. 대한승마협회가 2015년 6월 삼성의 승마 지원과 관련해 작성한 ‘한국승마 중장기 로드맵’은 삼성 합병과 박근혜-이재용 독대 뒤인 그해 8월 삼성이 최씨의 독일 현지법인인 비덱스포츠와 맺은 계약과 판박이다. 지원 총액이 2018년까지 228억원(비덱 계약에선 220억원)이고, 정씨를 포함한 선수 6명을 지원하며, 시합용과 훈련용 말 구입에 각각 100만유로와 50만유로를 책정한다는 등 내용과 액수가 대부분 일치한다. 문서 초안은 정씨의 코치로 삼성과 최씨 사이에서 창구 구실을 했다는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가 작성했다. 당시 승마협회장은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었다. 앞뒤 정황상 삼성과의 협의나 합의 없이는 이런 문서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상식적 판단일 터이다. 사실이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한달 전에 최씨 모녀 지원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정해진 게 된다.
이제 삼성이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합병 이전에 이미 금전 지원이 정해지고 합병 이후엔 박 대통령이 이를 닦달했다면, 더는 제3자 뇌물수수의 앞뒤가 안 맞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행위에 책임 있는 사람이 처벌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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