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9 19:42
수정 : 2005.11.09 19:42
사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먼저 서울 숭례문 관광을 권고받는다. 순환관광버스 노선의 중심에도 숭례문이 있다. 국외 홍보물의 맨 앞에 놓이는 것도 숭례문이다. 이유는 하나다. 국보 1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숭례문 앞에 선 외국인은 과연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과 예술 정신, 그리고 역사적 자취를 느낄 수 있을까. 날개인 성곽도 잃고, 주변의 고층 건물에 의해 나포된 가련한 목조 건축물에서 누가 이런 가치를 느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의문이 숭례문에 붙여진 번호를 바꿀 만한 충분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애초 문화재 당국은 숭례문을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꼽지 않았다. 당국은 아무 생각 없이 중요 문화재에 관리번호를 부여했다. 주민등록 번호와도 같았다. 문제라면 국보 1호라는 숫자의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엊그제 감사원이 국보 1호의 교체를 건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다시 불거진 논란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런 논란은 1996년에도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있었다. 일제는 34년 숭례문을 격하시켜 지칭한 남대문을 총독부에서 가장 잘 보인다 하여 조선고적 제1호로 지정했다. 광복 뒤 우리 정부는 전문적인 검토도 없이 그 순위를 대부분 그대로 따랐다. 각급 기관도 생각없이 숭례문을 대표 문화유산으로 홍보했다.
이번 논란을 그동안 유보됐던 우리의 문화재 지정체계를 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할 일은 전문가의 중지와 국민 여론을 최대한 수렴하는 것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이 권고하듯이, 가치 서열로 오해될 지정번호는 부여하지 않되 건축·공예·조각·기록 등 분야별로 분류하고 각 분야의 상징적 유물을 선별해 국가 홍보나 교육 자료로 삼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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