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09 19:42
수정 : 2005.11.09 19:42
사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학 연구팀에 의뢰해 전·의경들의 인권실태를 조사했더니, 상당수가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에 시달리고 있음이 드러났다. 설문 조사대상 중 12.4%가 복무 중 구타 또는 가혹행위를 경험했고, 10명 중 1명은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단 문화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성적 폭력이 적잖은 것은 지난 여름 한 전경부대의 ‘알몸 진급식’ 사건이 그리 예외적인 게 아니라는 걱정까지 들게 한다.
이런 일상적인 부대 안 폭력은 자살 등 심각한 일탈로 이어지기가 쉽다. 이번 조사에서도 26%가 상급자의 구타와 가혹행위 때문에 자살이나 복무이탈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특히 그중 27명(2.2%)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구타를 당하거나 목격하고도 못 본 척하거나 그냥 마음에 담아둔다고 한다. 이는 지휘관들이 관리를 이유로 폭력을 묵인하거나, 문제가 터지면 징계 등을 우려해 쉬쉬하는 관행 탓이 크다.
지금도 부대 안 폭력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잊을 만하면 한번씩 불거지고 있다. 현재 인권위가 직권조사 중인 진정 사건도 10여건에 이른다. 경찰은 사고가 날 때마다 관리대책을 내놓지만, 대개는 구타 예방교육과 특별점검 등 면피성 조처다.
고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부대 관리체계를 개선하고, 자유로운 인권 상담이 가능한 예방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인권보호관 등 외부 통제장치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 사이에선 전·의경 쪽이 군대보다 더 구타가 심하다는 말이 떠돈다. 부대 안 폭력을 방치하는 것은 더 큰 화를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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