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31 19:37
수정 : 2005.01.31 19:37
계유년 닭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 집 암탉의 병아리 육아기(?)를 소개하려 한다.
그동안 장에서 파는 개량종 닭을 키워 왔는데 동네 형님이 키우는 토종닭을 작년 가을에 얻어왔다. 토종닭은 개량종 닭보다 덩치도 작고 달걀도 메추리알보다 조금 큰 정도로 작지만 동그란 눈과 갸름한 목선이 개량종 닭보다 훨씬 예쁘고 자태도 곱다. 높은 나뭇가지에도 쉽게 날아오를 만큼 몸이 날래고 알도 잘 품는단다. 키우던 개량종 암탉은 부화기에서 부화된 놈이라 알을 품을 줄 모른다고 하더니 정말 낳기만 하고 품을 줄 몰라서 식구를 늘리지 못했는데, 토종닭은 알을 잘 품는다니 식구를 늘려 닭똥 거름을 많이 얻을 거라 기대가 되었다.
집에 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초겨울부터 암탉 한 마리가 알을 낳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에는 어미 닭이 알을 안 품는 줄 알고 매일 꺼내 먹었는데 옆집 할아버지께서 ‘서릿닭(서리가 내릴 즈음에 알을 품을 때 서릿닭이라고 한다)이 봄 닭보다 알을 잘 품는다’며 놔둬 보란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이 종이상자에 마른 풀을 넉넉히 담고 닭장에 넣어줬더니 암탉이 신통하게도 종이상자 안에다 더 알을 놓고는 열아홉 개가 되자 그때부터 하루 종일 꼼짝 않고 품기 시작했다. 종일 바닥을 파헤쳐 모이를 먹던 놈인데 이제부터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종이상자에서 아예 나오지를 않았다. 순하고 겁 많던 놈이 품고 있는 알을 좀 만질라치면 손을 쪼며 완강하게 저항까지 했다. 어미 닭이 알을 품기 시작한 지 20일이 지나면 병아리가 나온다는데 우리 집 닭장은 비도 새고, 울타리가 너무 엉성해서 병아리가 쉽게 밖으로 나올 수 있어 대대적인(?) 닭장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하루종일 시끄러운 연장소리에다 못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도 평소 같으면 도망 다니면서 꼬꼬댁거리며 난리가 났을 텐데 어미 닭은 꼼짝 않고 알만 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병아리가 한마리씩 알을 깨고 나오는데 열일곱 마리나 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 조그만 병아리들이 줄을 지어 어미를 따라다니며 어미 흉내를 내는 것이 얼마나 예쁘던지…. 그러나 며칠 지나 고치다만 닭장 철망 사이로 한밤중에 족제비가 들어가 병아리 아홉마리를 물고 가 버렸다. 호되게 놀란 어미닭은 이 때부터 조금만 불안하면 날개를 펴 새끼들을 숨기고 밤에도 그렇게 뜬눈으로 병아리들을 지켰다. 그러더니 어미닭의 머리가 하얗게 보일 정도로 깃털이 빠지고, 털빛도 거칠어졌다.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두 달 가까이 자기 몸은 돌보지도 않고 새끼들을 보살피는 어미닭의 지극 정성에 우리는 감동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당신 젊었을 때 한 번은 독수리가 날아와 병아리를 낚아채어 가는데 암탉이 독수리의 등에 올라타고 쪼아대더란다. 놀란 독수리가 병아리를 땅에 떨어뜨리니 그제야 독수리 등에서 내려와 황급히 도망을 가더라는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엄마는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우리 인간에게 어미 닭은 세상에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는 하찮은 생명은 하나도 없음을 일깨워줬다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겸손하고 좀더 낮은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주영미/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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