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16 19:29
수정 : 2005.11.16 19:29
사설
친일한 대가로 받은 재산을 돌려달라는 후손의 소송을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각하한 수원지법 이종광 판사의 판결에 뜨끔했을 사람은 친일파 후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판결은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소송과 같은 반민족 행위는 헌정질서 파괴 행위이지만, 이런 헌법 정신을 구현하는 법률적 기준이 없으므로 법이 마련될 때까지 재판권을 정지시킨다는 것이다. 그동안 입법을 요리조리 피해온 입법부로서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국회 법사위에는 현재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 특별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 2월 여야 의원 169명이 발의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선 반드시 처리한다고 하나 경험상 자신할 수는 없다. 고 제정구 의원 등이 1993년 발의한 ’민족 정통성 회복 특별법안‘은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16대 때도 발의됐지만 자동 폐기됐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이렇게 국회가 직무유기를 하는 동안 친일파 후손들은 친일 대가로 받은 땅을 되찾으려는 소송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지금까지 35건이 제기됐고, 확정된 16건 가운데 8건에서 승소했다. 입법부의 ‘직무유기’로 헌정질서 파괴 행위가 용인된 셈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땅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지난해에만 무려 110만평을 가져갔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매국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속설을 정부가 앞장서 사실로 입증해준 꼴이다.
특별법의 위헌 시비에 대해 법무부나 신임 대법관들은 위헌소지가 없다고 유권해석을 했다. 앞서 48년 제헌헌법은 반민족 행위자 처벌법 제정을 명문화한 바 있다. 입법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입법 재량의 한계를 넘어선다. 국회는 57년 동안의 직무유기를 올해로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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