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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박기영 임명 철회, 청와대가 결단해야 |
‘황우석 사건’에 연루된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빗발치는 퇴진 요구에도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본부장은 “많은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열정적으로 일해 국민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인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그는 “청와대에서 과학기술을 총괄한 사람으로서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황우석 사건’에 대해 11년 만에 처음으로 사과했다. 2006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에서 사퇴할 때도 버티고 버티다 여론이 들끓자 그제야 마지못해 물러났다. 이후 아무런 사과나 반성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다. 뒤늦게나마 사과한 것은 다행이지만 말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다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황우석 사건은 단순히 연구윤리 위반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에 오명을 떨친 희대의 ‘과학 사기극’이었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막대한 연구비를 지원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준 핵심 인물이 박기영씨였다. 본인 자신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설사 주변에서 천거하더라도 고사하는 게 한때 대통령을 보좌했던 사람의 온당한 처신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구국의 심정’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자리를 고집하고 있으니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과학기술 관련 단체에선 박기영 본부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이 줄을 잇고 있다.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각 부처의 연구개발을 총괄해 연간 22조원의 예산을 다루는 직책인데, 과학기술 분야의 신뢰와 지지를 얻는 것은 기대난망인 상황이다. 박기영씨가 직책을 유지하면 과학기술의 혁신은커녕 오히려 퇴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다. 청와대도 이런 여론을 모를 리 없을 텐데 민심과 동떨어진 인사를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청와대 시스템 어딘가에 고장이 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물론, 대통령의 인사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미 그런 차원을 넘어서버렸다. 이번 인사에 끝내 제동이 걸리지 않을 경우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오기 인사’, ‘불통 인사’란 딱지가 붙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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