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청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오던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은 우리 가슴에 한줄기 빗물을 내리게 한다. 그가 그런 극단적 방식을 택하게 된 정확한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회 저명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은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의 자살을 놓고 일부에서는 검찰의 강압수사설도 제기하고, 국정원 도청 자료의 한나라당 유출과 연관지어 보기도 하지만 아직은 모두 추정일 뿐이다. 고인의 성격이나 자살 전 행적 등에 비춰볼 때 자신이 모시던 국정원장을 구속에 이르게 한 데 대한 인간적 부담감과 자책감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도 설득력있게 나온다.그의 자살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비극의 씨앗은 근원적으로 국정원의 불법도청에 있다는 점이다. 그를 도청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게 내몬 당시 정권의 분위기, 그 자신 국정원 제2인자면서도 이를 단호히 뿌리치지 못한 결과가 결국 이런 불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자살은 도청이라는 국가범죄를 이 땅에서 영원히 뿌리뽑아야 할 당위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각성제로 다가온다.
그의 자살이 결코 도청 수사에 영향을 주거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치권은 그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을 버려야 한다. 벌써부터 이번 사건이 호남 민심의 동향과 맞물려 정치권의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도 도청 수사의 철저한 매듭과 국정원의 근본적 개혁은 절실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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