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옛 안기부 불법도청 사건의 몸통인 ‘엑스파일’ 내용에 대한 수사를 놓고 정치권에서 딴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여당은 수사는 검찰이 맡고 내용 공개는 제3의 민간기구에서 판단하자는 특별법을 내놨고, 야 3당은 공개와 수사 모두 특검에서 다루자는 특검법을 제출했다. 어느 쪽이든 수사도 하고 공개도 하자는 쪽이었다.그런데 그제 열린 법사위 소위에서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특검법안을 사실상 수용하는 절충안을 내놨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내용 공개는 불가능하며 특검법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말을 바꿨다. 불과 석달 전 “안기부와 검찰, 정치권이 모두 관여된 사건이니 하루빨리 특검을 도입하자”던 주장에서 크게 물러선 것이다. 그러면서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이 구속되는 등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검찰수사 흐름을 굳이 막아설 필요가 없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말을 바꾸는 이런 태도는 책임 있는 야당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열린우리당 역시 불리한 도청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서둘러 특검 수용으로 선회한 것이란 지적을 면하기 힘들다.
도청 내용 수사는 여야의 정략과 이해득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등 정-경-언으로 이어지는 부패고리의 실상을 밝히고 심판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검찰 수사는 홍석현씨 등 핵심 관련자들이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어 자칫 이들한테 면죄부만 주고 끝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어차피 엑스파일 내용 수사는 검찰이 떡값 수수 등 의혹의 당사자여서 정치권의 대안 마련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여야 모두 열린 자세로 최대한 빨리 이 문제를 매듭 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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