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07 18:27
수정 : 2017.12.07 19:02
개헌 논의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회 개헌특위는 분야별 집중토론을 끝마쳤지만 정부형태(권력구조)가 장벽으로 떠오르면서 교착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권이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면 국회는 존재 의의를 의심받게 될 것이다. 여야 지도부가 개헌 논의 진척을 위한 특단의 의지를 내보여야 한다.
30년 만에 국회에 개헌특위가 꾸려진 게 지난해 12월29일이다. 그동안 이견이 없어 사실상 합의한 내용이 꽤 많다. 대부분 쟁점이 추려져 있고 논점도 정리돼 있다. 문제는, 정부형태에 대한 여야 이견이다.
6일 정부형태를 논의한 개헌특위는 지루한 공방만 반복했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의원들은 국회에 총리 선출(추천)권을 주는 등의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옹호했지만 각 당 내부에서조차 의견이 갈렸다. 말로는 개헌을 하자면서 정부형태에 대한 내부 의견을 정리한 정당은 한 곳도 없다. 여야를 떠나 개헌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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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개헌특위가 6일 전체회의를 열어 정부형태(권력구조) 문제를 토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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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논의를 ‘독점’한 국회는 국민적 논의를 틀어막고 있다. 각계 전문가 53명이 참여한 개헌자문위원회는 정부형태를 다룰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자고 만장일치로 제안했다. 정부형태는 여야 이해가 엇갈리는 만큼, 신고리 5·6호기 문제처럼 국민 공론을 모아보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해법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국민 의견을 수렴할 절차는 봉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놀부 심보’가 따로 없다. 이대로 가면 국회의 개헌 논의는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개헌 논의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정세균 국회의장은 “2월까지 (여야가) 개헌안을 합의하지 못하면 대통령 발의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가 주어진 개헌 주도권을 포기하면, 발의권을 대통령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는 최후통첩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가 끝내 개헌안을 내지 못하면 정부형태를 제외한 기본권과 지방분권 분야에 한정해서라도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만약 이런 사태가 현실화하면 국회가 왜 존재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맞닥트릴 수밖에 없다. 정치세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국민은 질타할 테고, 그 화살은 개헌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상 권한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국회를 제치고 개헌안을 발의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렇지만 국회가 당리당략 때문에 끝내 개헌 합의에 실패한다면, 아예 개헌을 포기하거나 대통령 발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국회가 지금부터라도 광범위하게 국민 의사를 수렴하고 논의의 집중성을 높여, 내년 2월 무렵까지 개헌안을 내야 한다.
헌법은 시대 변화를 담아내고 미래를 지향하는 방향타가 돼야 한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이 흘렀고 세상은 눈부시게 변했다. 지금 헌법의 뼈대는 박정희 군사독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1962년 만들어진 ‘6호 헌법’에 기반하고 있다. 헌법도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됐다. 국회는 개헌이 시대적 요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개헌 논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집중 논의를 위한 기구 구성과 국민 공론을 수렴할 수 있는 틀의 도입은 그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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