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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01 19:38 수정 : 2005.02.01 19:38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참으로 어이없다. 최근 들어 살짝 열리는가 싶던 문화·예술에 대한 법원의 보수적 빗장이 다시 닫히는 것 같아 답답하다. 한마디로 이번 결정은, 법리로 포장된 재판부의 정치주의가 관객들의 문화적 판단력을 짓밟은 꼴이다.

모든 예술 작품은 예술가 특유의 상상력의 소산이다. 현실의 모든 주제는 예술가 고유의 상상력 안에서 해체되고 재해석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여러 예술적 언어로 재구성되는 게 예술 작품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특정 대목이 현실을 방불케 하니, 이를 도려내라는 것은 가당찮다. 역사적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특정 대목을 끼워넣는 것은, 해체한 현실을 다시 구성해내려는, 특유의 예술가적 상상력의 산물인 까닭이다.

다큐멘터리 장면을 빼라는 법원의 판결은 그래서 황당하기조차 하다. 영화가 허구라는 것을 망각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니, 관객의 식견을 우습게 보는 문화적 천박함에 놀랄 따름이다. 이 다큐멘터리들은 블랙코미디로 채색된 이 영화의 예술적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소중한 장치다. 대통령 저격 사건과 웃기지도 않는 측근들의 행태를 다룬 이 영화는, 이들 다큐멘터리의 앞뒤 배치를 통해 비로소 블랙코미디로 희화화될 수 있었다. 게다가 감독은 이 장면들을 “영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심리적 동기였다”고 고백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법원은 이 부분을 도려내고 관객과 만나라고 주문했다. 이는 판사가 감독과 관객을 대신해 판단하겠다는 오만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상영금지’라는 20세기적 잣대를 들이대 작품 전체를 옭아매는 게 낫다.

오늘날 영화 관객들은 삽입된 다큐멘터리 때문에 영화가 허구라는 걸 망각할 정도는 한참 넘어섰다. 우리 법원도 이제는 문화적 후진성에서 벗어나 이런 정도 만큼의 근대성을 보일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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