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사설] 제천… 밀양… ‘안전한 나라’ 이젠 행동이 필요하다 |
전국에 강추위가 몰아친 26일, 또다시 안타까운 화재 소식과 마주했다. 경남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적어도 37명이 숨졌다. 지난해 12월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이 숨진 지 불과 한달 남짓 만에 발생한 대형 재난 앞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참담함과 절망감을 느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재난을 지켜봐야 하나. 다중이용시설, 특히 병원처럼 재난 취약자들이 모여 있는 시설에 대해선 우선적으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화재는 인명피해 규모가 너무 크다. 53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9년 인천 연수구 호프집 화재 사건 이후 최대 규모다. 병원 화재로는 2014년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숨진 지 4년 만이다. 신고 접수 이후 소방대는 3분 만에 도착했다. 거의 같은 시각 구조대도 도착했다. 2시간 만에 불길이 잡히고, 3시간 안에 화재는 완전히 진압됐다. 문제는 연기와 유독가스였다. 소방당국은 호흡 장애가 있는 환자가 많았다고 밝혔다. 밀양에서 비교적 규모가 있고 뇌혈관과 노인성 질환 전문으로 알려진 이 병원 특성상, 대피 등에 취약한 고령층 환자가 많았던 점도 인명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사망자 대다수가 60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사후 설명일 뿐이다. 병원 같은 곳은 당연히 탈출에 취약한 환자들이 이용하는 시설임을 전제로 소방대책과 재난 매뉴얼이 마련되어야 한다. 2010년 완공된 5층짜리 건물의 이 병원엔 본관에 83명, 구름다리로 연결된 요양병원에 94명이 입원해 있었지만,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장성 요양병원 화재 이후 2015년부터 의료기관의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세종병원은 바닥 면적이 의무설치 기준보다 작아 위법이 아니라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화재가 나면 큰 병원이건 작은 병원이건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실제 큰 피해는 최신식 대형시설보다 지어진 지 오래된 중급 규모의 시설들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안전대책과 관련해 소방법이나 건축법 개정 때마다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로 소급적용이 안 되고 유예기간을 길게 두는데, 이래선 안 된다. 최소한 병원, 유치원 등 재난 취약자들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해선 예외 없는 안전대책을 도입하는 걸 정부는 검토하기 바란다. 정확한 발화 지점, 화재 원인과 함께 의료시설에 적용되는 매뉴얼대로 피난과 구조가 이뤄졌는지도 철저히 확인해야 할 것이다.
중소 도시 안전점검 획기적 강화 해야
지역 중소도시의 소방인력 확보도 시급히 검토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인명피해가 큰 화재사고 중 지역에서 일어난 게 적지 않다. 그런데도 구조대 팀당 6~8명을 둔다는 소방법 규정은 특히 지역에 가면 무용지물이다. 서울과 지역에서 목숨의 무게가 다를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오랜 세월 비용 문제가 안전 문제를 삼켜왔다. 잇따른 대형사고는 그 시스템이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안전불감증부터 부족한 소방인력과 도로, 화재에 취약한 건축구조 등 문제점은 이미 다 나와 있다. 얼마 전 정부는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젠 구호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할 때다. 안타깝게 숨진 이들의 명복을 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