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30 21:04
수정 : 2005.11.30 21:04
사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가 오늘 출범한다. 제헌헌법에 따라 발족했던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의 공작으로 좌초된 지 56년 만이다. 반세기가 지났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때 그 후손들은 과거사위의 출범에 대해, 진실의 복원을 분열 책동이라고 하고, 은폐된 사실의 발굴을 ‘과거사 뒤집기’라고 주장한다. 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10여년 전 이쪽저쪽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던 일이 있다. 1989년 넬슨 만델라는 출옥하며 ‘용서와 화해는 남아공은 물론 아프리카 전역의 문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5년 뒤 그는 대통령 취임과 함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주교를 위원장으로 한 진실화해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만델라 정권의 탄생을 도왔던 드 클레르크는 전면적인 사면을 요구했고, 만델라는 이렇게 답했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사면과 화해는 있을 수 없다. 죄를 용서할 수는 있지만 잊을 순 없다.” 위원회는 백인의 인종차별 범죄는 물론 만델라가 이끌던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과오까지도 조사해 기록했다. 민족회의가 반발하자 투투 주교는 “어제의 피억압자가 오늘의 억압자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실 앞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었다.
을사늑약 이후 우리 역사를 규정짓는 열쇳말은 병탄과 식민지배, 미군정과 친일파의 득세, 분단과 6·25 전쟁, 동족상잔과 집단학살, 독재와 인권유린, 불균형 성장과 경제적 불평등 따위였다. 유년의 정신적 상처는 정상 성장을 가로막는다. 사회적으론 통합과 도약을 어렵게 한다. 과거사위가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실의 복원만이 왜곡을 바로잡고 기억의 상처를 치유한다. 모두에게 불행했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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