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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3 18:11 수정 : 2018.04.13 19:04

어떤 행위가 성희롱인지 판단할 때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 등 피해자의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했거나 신고 이후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사정만으로 진술 내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최근 미투 운동을 둘러싼 2차 피해 우려가 상당한 가운데 대법원이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언급하면서 전향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직장내 성희롱 ‘2차 피해에 대한 사업주의 불법행위 책임’ 판결에 이어 최고법원의 바람직한 변화 조짐으로 읽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ㅇ대학 ㅈ교수는 학과 모꼬지(단합모임)에서 자고 있던 여학생의 볼에 뽀뽀를 하는 등 여러차례 성추행 및 성희롱을 했다가 2015년 해임됐다. 수업시간에 질문하면 뒤에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하거나 복도에서 마주쳐도 얼굴이나 허리에 손을 대는 등 공개 장소에서 추행을 일삼았다. 추천서 작성 등을 위해 연구실을 찾아가면 뽀뽀해주면 써주겠다는 등 접촉을 강요하거나 “나랑 사귀자”는 등 성희롱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심 법원은 해임이 부당하다는 교수의 주장을 배척했으나 2심은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학생이 수업을 수강한 점 등을 이유로 피해자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평소에 학생들과 자주 농담하고 연애상담을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밝혔다. 판결문 자체가 2차 가해 주장들을 연상시킬 정도다.

대법원 2부는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2심 판결문 자체가 “가해자 중심적 사고와 인식을 토대로 평가를 내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질타했다.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 문화와 인식·구조로 인해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부정적 반응이나 불이익한 처우 등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판단 역시 주목할 만하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 이후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 전반의 성차별적 구조와 인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계기로 미투 운동이 사회운동을 넘어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개폐’ 등 광범위한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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